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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Jan 25. 2022

126 호시탐탐 커피 한잔을 권하는

과테말라 엘 플라타닐로 게이샤 내추럴

 일찍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밖의 거리를 바라본다. 사물이 흐릿한 시간인데도 누군가는 출근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동차 바퀴를 발로 차며 상태를 살피고 있다. 분주한 이들의 일찍 시작된 하루를 살피며 나도 나른한 감정의 끈을 조인다. 또 하루를 시작한다. 고요한 에너지를 충전하여 할당된 몫의 일을 하려고 한다.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는 하루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여유로운 날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된 노동이 동반된 일과는 아니고 그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날일 것이다. 멀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싹싹한 태도를 보이며 성실히 하루를 보낼 것이다. 득도한 친구는 다람쥐만큼 살고 오늘은 내일에 대한 이런저런 궁리는 하지 않고 오늘 딱 하루만 집중해서 살아야겠다. 나는 그리해야겠다. 나풀나풀 가볍게 오늘 하루만 단순하고 깊게 살아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단정하고 깊이가 있다. 본인의 매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알아주는 매력이 있다. 풍부하고 복잡한 향이 좋다. 달콤하고 단단한 쓴맛이 정겹다. 들쑥날쑥한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는 커피다. 초콜릿 맛이 나며 버터리하다. 테말라 엘 플라타닐로 게이샤, 내추럴 커피라 더욱 향기롭다. 복닥복닥 거리며 지내던 친구처럼 식어도 온기가 남아 있어 위안을 주는 커피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없어지는 것들을 생각하며 마신다. 날마다 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보면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걸 알면서 자꾸 없어져 버린 것들이 떠오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은 날 열정적으로 살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싶다. 힘들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쉬 포기해 버리는 습성으로 끝까지 이룬 것이 없어서 그런가 싶다. 긴 시간 공을 들여 해내는 성취를 경험하지 못한 때문이라 여긴다. 오늘의 커피를 마시며 마음속에서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불순한 마음들을 지운다. 결과물이 없는 삶을 비난하는 마음도 없앤다. 오늘은 오늘만 생각하며 집중하기로 약속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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