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델링 Jan 28. 2022

127 힘 빼고 입수, 가래떡이 되다

과테말라 산타페리사 선라이즈 게이샤

 하나 둘 사야 할 것들이 생기는 시간이다. 무엇부터 사야 하나 고민한다. 펜을 들고 떠오르는 것부터 적는다. 자의 자리에서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 내 짐도 만만찮은데 오늘은 노모의 짐을 덜어 주기로 한다. 사랑하는 엄마와 결을 맞춰 한나절을 보내기 위해 일찍 준비한다. 허겁지겁 집을 나서면 빠뜨리는 게 반드시 있고 노모를 만나 일을 하다 보면 얼뜨고 거친 내 행동으로 야단을 맞기 일쑤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노모의 눈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아이일 뿐이다.  고 싶고 만나고 싶은 들이 오는 시간이다. 멀리 있는 이들 기다리는 모의 레는 연휴가 시작다. 노모의 기다림 앞에 나는 벌써 무겁고 피곤하.


 하룻밤 불린 쌀을 가지고 방앗간에 간다. 입구는 일찍 출석한 어머님들의 긴 행렬이 알로락달로락 에 띈다. 컨베이어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모두 같은 빨간 다라이에 쌀이 수북이 쌓여있다. 차례대로 쌀을 빻는다. 부드럽게 될 때까지 3번 빻는다. 부드럽고 뽀얀 쌀가루를 차곡차곡 찜기에 담아 찐다. 시루에서 푹 쪄진 쌀가루는 진득한 백설기 덩이가 되어 가래떡 압출기에 내동댕이쳐진다. 방망이로 밀어 넣으면 두 개의 구멍으로 굵은 밧줄 같은 흰 떡이 줄줄 뿜어져 나온다. 이 시점 제일 중요한 것은 가래떡을 차갑고 깨끗한 물속에 담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는 뜨끈한 김이 나고 아내로 나온 떡은 찬물에 수영을 한다. 으레 그렇듯 가래떡도 물에 빠질 때 힘을 빼 한다. 관을 통해 나오는 떡 줄기도 입수할 때는 한 번에 철퍼덩 하며 빨간 다라이에 떨어진다. 두 번의 입수 후 재빠른 가위질이 가해진다. 같은 길이로 댕강댕강 잘다. 로소 가래떡이 된다.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가지런히 담긴 가래떡은 든든한 설음식이 된다.


 오늘 음 날씨는 어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음악처럼 흐르는 좋은 말을 많이 하 있다고 말하겠다. 허고백하자면 내 마음 날씨는 희끗한 흐림이다. 노모와 부댖기는 시간이 행복하면서도 꽤나 피곤하다. 친구들의 친정 엄마는 늘 후한 점수를 받지만 나는 별 5개 주기 어렵다. 잘 준다 해도 3개,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면 2개. 어, 엄마 미안해요.


 오늘의 커피는 근사하고 멋지다. 기나긴 인생을 그럼에도 무탈히 살아내고 있는 엄마랑 마신다. 고유한 취향 없이 매일 노동하고 먹이고 입히는 일로 살아온 엄마의 시간에 대한 위로다. 달달하지 않은 인생을 의무감으로 살아온 엄마 남은 시간은 마음껏 드시고 즐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곁에서 엄마의 세상이 조금 넓어지는 것을 보며 웃으며 글을 쓰고 가끔 징징거리고 싶다.


 과테라 산타페리사 선라이즈 게이샤. 향이 달고 화사한 잔꽃이 만개한 플로럴함이 있다. 버터맛 스카치 캔디의 캐러멜 맛이 난다. 과즙이 줄줄 흐르는 잘 익은 후무사 자두의 산미는 미디엄 하이 로스팅에서 생긴 것 같다. 향과 산미를 위해 덜 잘 볶인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다. 땅히 그 잘난 맛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지만 맛있고 특별한 커피임은 확실하다. 들에 피는 작은 꽃이 가련하고 화사하게 존재를 뽐내는 듯 오늘의 커피도 자신의 색을 향으로 표현한다. 지금껏 걸어온 자신의 길이 뚜렷하게 보이는 우리 삶 같은 커피다. 앞으로 조금 나아진 환경에서 설탕 한숟갈 만큼만 더 달달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자기 주장을 하는 커피다.

매거진의 이전글 126 호시탐탐 커피 한잔을 권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