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톤의 잎이 매력적이고 어여쁜 무늬 벤자민 고무나무가 시름시름 앓는다. 잎이 얇고 양이 많은 탐스러운 식물이라 세심히 돌보는데 자꾸 시들하다. 실내공기가 나빠서 시들거리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공기정화식물이 공기가 나쁘다고 시들거리면 이상한 일이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가장 햇빛이 많이 드는 쪽으로 옮겨주길 반복한다. 잎이 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양제도 놓았다. 제발 전처럼 푸릇푸릇해지면 좋겠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더 바삭하게 말라가며 잎을 떨군다. 갱년기가 시작된 여인의 손거스러미 같이 버석거리는 이파리는 간당간당 달렸다 떨어진다. 적응기가 끝난 식물이라 큰 관리 없이도 잘 자랐는데 무슨 일인가 싶다. 겉 흙이 마를 때 충분히 물을 줬고, 요즘처럼 추울 때도 10도 이상 유지했다. 시들거릴 이유가 없다.
꽃집 숙이에게 물었다. 언니, 가져오기 힘들면 신문을 펴고 나무를 화분에서 꺼내보세요, 한다. 나무뿌리가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들어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니 싶다. 키가 커진 나무가 그리도 작은 화분에 갇혀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에 갇혀 뿌리 성장이 멈춘 것이다. 성장이 멈췄으니 나무가 죽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속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근본 원인을 찾아야 치료가 가능한데 그걸 몰랐다. 맘에 드는 나무 하나 잘 키워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시들거리는 나무를 보며 생각하니 지금껏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글쓰기도 그렇다.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붙들고 늘어진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애써 위안 삼을 뿐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맞닥뜨린 고민과 문제를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수단이 되었고,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데 공부가 되었다고 위로하는 정도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커피는 토닥토닥 위로 두 스푼 더한 콜롬비아 후일라 디카페인.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는 무탈한 일상 같은 커피다. 방울토마토 향이 난다. 묵직한 바디감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산미는 거의 없다. 견과류의 고소함과 초콜릿의 단맛, 은근한 스모키함이 있다.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큰 특색이 없다. 평범하다. 카페인이 없는 커피, 내 삶을 닮았다. 부서러지지 않지만 색감이 없고 딱딱하지 않지만 부드럽지 않은 참 크래커 같다. 알맹이 없는 밍밍한 삶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심심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다. 만약 정말 예고 없이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동이가 맘에 걸린다. 내 마음 고생시킨 것 맞는데 나도 사는 동안 따로 특별히 해준 게 없다. 오래 기억할 무엇을 남기지 못했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게 걸린다. 회피하고 도망가고 숨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걸린 데서 또 걸릴 게 분명하다. 그래도 지금은 적당히 사이좋게 천천히 삶이 영글었으면 좋겠다. 카페인 빠진 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