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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Feb 07. 2022

132 오늘도 힘내서 사랑하기로

에티오피아 모카하라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도쿄의 야경,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에 비하면 5분 간격으로 다니는 유리카모멘 맨 끝 차량 한 좌석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손을 잡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과장의 옆모습이 쓸쓸해 보인 탓도 있었다. 그저 단순하게 쓸쓸해 보인 게 아니라, 혼자 사는 집으로 들어가 다음 날 아침을 위해 자명종 시계를 돌리는 일만 하면 되는 그가 자기보다 훨씬 더 외로워 보였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기도 외롭다고 털어놓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동경만경 - 요시다 슈이치, 113쪽. 긴 목을 감싼 목티도 바람 앞엔 무용지물이다. 휘리릭 스치는 바람에도 목은 늘어진 얇은 주름만큼 춥다. 기다리는 비 소식은 없다. 요즘처럼 투명하고 푸른 하늘이 야속한 적이 있었나 싶다. 을 사랑하는 어머님은 오매불망 비를 기다린다. 여지껏 이런 겨울 가뭄은 없었다고 한숨이다. 농사에 관심이 없는 나는 그토록 심한 가뭄인지 고민도 해본 적 없다. 괜스레 부끄럽고 미안하다. 말로만 힘든 농사일 그만하시라 그랬을 뿐이다. 빈 말은 아니었지만 참 성의 없는 말이었구나 싶다. 어머님은 농사일이 보람이고 자랑이고 자부심인데 옆에서 거드는 일이 성가시다고 매일매일 이제는 그만 좀 쉬시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었다. 대놓고 등한시하기 어려우니 자꾸 어머님 연세를 핑계 대며 힘든 일 놓으라고 볼멘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솔직하지 못하고 게으른 사람의 행동이다. 부쩍 가족과 그 공동체에 얽힌 마음과 마음의 결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서운하게 했거나 미운 마음을 표현했거나 세련되지 못하게 행동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모카하라. 마음이 울적하여 소설을 읽으며 아름다운 노후를 상상한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커피 향에 고르지 못한 습관과 거친 말투를 조물조물 버무려 날려 보낸다. 손한 말과 공감의 웃음은 쓴맛에 섞어 오래오래 남겨야겠다. 내가 누린 편안함과 따뜻함은 곁을 살피는 부모님의 덕이었고 그분들의 배려였건만 당연하다 여겼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고생하신 그분들께 묵묵히 돌려드려야 한다. 새삼 철이 든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미오다. 그녀의 사랑은 평범한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랑이다. 그녀의 사랑이란 마음을 움직여 삶을 그려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표현하는데 서툴더라도 추하지 않고 의연한 사랑이 더 좋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묵직하고 섬뜩한 사랑 말고 게으른 졸음처럼 미지근하게 마음을 끄는 사랑이 오래가는 사랑이 아닐까 한다. 미호에게 은은하고 씁쓸한 커피 한 잔 건다. 뒷맛이 쓸쓸한 커피다. 부드러운 크림 맛이 느껴진다. 사랑한다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쓸어주며 마시는 커피다. 에티오피아 모카하라는 그녀의 사랑에 소리 없이 응원을 보다. 초코향과 깊은 산미가 커피의 맛을 흥겹게 한다. 실제 삶에서 어떤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느냐가 핵심이듯 사랑은 억지스럽고 고집스럽지 않은 마음의 융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커피다. 모카하라, 미오의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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