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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Feb 16. 2022

138 버리고 남기는 것 사이에

예가체프 모모라

 이번에는 다 버리자. 버리고 또 버리자. 어차피 입지도 쓰지도 않는 것들인데 버리자. 결국 다 버리고 갈 인생인데 미리미리 버리는 연습을 하자. 먼저 책을 버려야 한다. 많아도 넘 많다. 제대로 된 내 방 한 칸도 없는데 책 욕심은 많아서 책 사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옛날 옛날에 전세금 이백만 원 올려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당장 돈이 없다며 백만 원만 드리면 어찌 안 될까요 하던 시절에도 책은 샀고 남편은 대학원을 다녔다. 돌이켜보면 옛날에는 돈이 없었고 지금은 마음이 없다. 낡아서 부스러질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이야기가 옆길로 간다. 버려야 하는 것들을 얘기하자. 활자매체에 진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 버려야 할 책은 책뿐만 아니라 계간지 월간지 신문 스크랩 등 차고 넘친다. 문제는 버리고 나면 꼭 봐야 할 일이 생겨 다시 새책을 사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계속 출간되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절판되었거나 초판본인 경우는 말이 다르다. 쉽게 버릴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소장 가치는 개인마다 다르기에 기준이 어떠하다 말할 수 없지만 버리는 일은 하고 아깝다.


 가족 사이에도 의견은 다르고 마음 쓰는 곳도 다르다. 소중하다 주장하는 것도 다르다. 그런 탓에 버리는 일은 더 더디고 어렵다. 상대방에게 먼저 버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거나 거거나 별다른 것은 없지만 서로 자신의 것은 소중하다. 추억이 어려있고 아까운 마음이 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버리는 일은 사들이기보다 만 배는 어려워서 버리자고 다짐하고도 실천하지 못한다. 오늘도 버리려고 잔뜩 부려놓고 은행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에 책장에 못 들어가는 책이 들렸다.


 오늘의 커피는 예가체프 모모라. 장미 향기가 난다. 린세스 드 모나코다. 분홍에 우윳빛이 화사한 독특하고 멋진 장미다. 들어도 달콤한 향이 희미하게 감도는 분홍 장미다. 간질거려서 입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도 할 수 있게 하는 사랑스런 향기가 넘친다. 당신과 함께 마시고 싶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지는 커피다. 쌉쌀하고 상큼하고 부드러운 초콜릿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감은 없어지고 우유부단해지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제대로 하지 못해 처참히 깨진 날 마시자. 분명 자신을 누르는 두려움을 떨쳐내지는 못하더라도 두려움의 근원은 깨닫게 될 것이다. 가다듬고 숨을 죽이고 참는 법을 배운다. 미숙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기고 않고 노력하며 성장해 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힘든 일 싫어하고 끈기 없는 나는 오늘도 엄마의 듣기 힘든 된소리를 들으며 전화를 끊는다. 용기를 주는 화려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귀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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