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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Feb 17. 2022

139 조의 표함, 그 마음의 무게

커피 컬처 - 과테말라 카페 테낭고 워시드

 아까운 나이다. 엄마는 그리 말씀하신다. 아깝지 않은 나이란 게 없지만 그래도 아깝구나 하신다. 철이죽었다. 병으로 아프다 말다를 반복하다 죽었다. 실감 나지 않는다. 이른둥이 입학생이라 오십 세라 한다. 한국 근대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야기 물론 아니다. 철이는 열세 살에도 키가 컸다. 말랐다. 말이 없고 순했다. 숙제를 꼬박꼬박 해왔고, 아침 자습 시간에도 열심히 칠판의 문제를 풀었다. 고무줄을 끊지도 않았고, 화분을 던지지도 않았으며, 연탄재를 발로 밟아 뭉개지도 않았다. 크고 파란 쓰레기통을 머리에 뒤집에 쓴  엉덩짝을 몽둥이로 맞지도 않았다. 그때 또래 녀석들이 즐겨했던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남자 담임의 표독한 눈길에 걸리지 않은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조금 허멀겋게 조용했던 아이였다. 기억하는 전부다. 상복을 입은 아내와 아이들은 어떤 표정일까, 장례식에 온 친구들은 무슨 얘기를 할까.


 영은 씨의 어깨에 두 아이가 얹혔다. 아홉 살 아래라 이제 겨우 마흔이나 됐을 것이다. 아까운 나이다. 참 재미있게 살 날그득히 남았을 나이다. 술은 적게 먹는 게 옳았다고,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자중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검고 맑은 눈을 가진 아내는 울지도 않고 묵묵히 서 있고 아이들은 때때로 티격태격한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을 것이다. 다정스럽고 대수롭지 않았던 행동들이 그리움으로 남아 길게 아플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부부 생활을 한 사람이 앞으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모든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해주던 사람이었다면 맞닥뜨릴 현실이 냉혹할 것이다.


 곧 죽는다면 먼저 버릴 것, 둘 것을 나누는 일을 하겠다. 미 없는 것들에 가려져 있던 소중한 것을 꺼내야겠다. 쓸모없어지고 쓸모를 알 수 없어 켜켜이 쌓아둔 것들을 버리거나 나눠야겠다. 주변을 정리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겠다. 죽음을 성찰하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죽을 때 어떤 처우를  바라는지 미리 정해야겠다. 장례식에 대해 생각하고 그 어려운 결정을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아야겠다. 스스로 문서화해서 보관해야겠다. 살아온 길에 씁쓸한 일들이 더 많았더라도 제대로 기록해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과테말라 카페 테낭고 워시드. 뽀빠이 속에  별사탕 맛이 난다. 달달하고 쌀쌀하고 맑은 맛이다. 가볍고 그럭저럭 바삭한 느낌도 드는 쓴맛이 울컥하다. 따뜻하고 아삭한 과일 향기도 덩달아 핀다. 새콤달콤하고 담백하다. 삶을 정돈하는 시간이 필요하는 각오를 다지며 마시는 커피다. 표현하기 힘든 마음을 힘듦 없이 표할 수 있는 곳에서 망자에게 조의를 표한다. 망자에게 보내는 조의는 남은 이에게 까마득한 이다. 그 깊은 고통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 흰 봉투에 든 오만 원이라는 것이 거슬린다. 지폐 한 장으로 조의든 슬픔이든 위로든 배려든 모든 걸 퉁친다. 얄팍하고도 가벼운 마음을 얼른 덮는다. 곧 느긋할 시간이 올 것인데 서둘러 가버린 사람은 무얼 가져갔을까? 남은 사람은 감사합니다, 기뻐요. 그런 부드러운 말을 얼른 다시 하며 일상을 맞이할까? 숙제만 남은 조의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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