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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Mar 03. 2022

145 좋은 건 네가 먼저 하렴

카페 고유 - 쿠바 알투라

 벚꽃이 흩날리는 날을 사랑하고, 텅 빈 들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자신이 슬퍼하거나 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는 네가 그립다. 러지고 일어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말하고, 지고 실패하는데 익숙해서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다 너는 더없이 멋지다. 나이가 많아도 꿈을 꾸는 네가 좋다. 그런 네가 친구라서 진짜 많이 기쁘다. 덕분에 나도 자꾸 노력하며 웃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소개해 준 책을 나도 읽는다.


시간은 흘러간다. 새가 떠 있는 수면을 바라보며, 기대인지 불안인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나오미는 생각한다. 내년 이맘때, 내후년 이맘때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곳에 코타는 있을까. 유미도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우리 이렇게 둘이서 쇼핑하고, 어슬렁어슬렁 산책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인지 모르겠다." 똑똑 소리를 내며 빼빼로를 깨물어 먹던 유미가 호들갑스럽게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오미를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잖아." 먹으라니까, 하며 과자를 내민다. "마미야 형제를 봐. 지금껏 함께 놀잖아." 유미는 발을 대롱거리며 그렇게 말하고 웃는다.


 마미야 형제 - 에쿠니 가오리, 248쪽. 사회인이 되고 삼십 대에 들어선 테츠노부는 형 아키노부의 행복을 위해서 여교사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냥 쭉 같이 지낸다. 어른이 된 형제가 같이 지내기는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마미야 형제는 지금껏 함께 논다. 마음을 잡아주고 슬픔을 나누고 웃음을 함께 한다. 둘이면서 하나인 그들이다. 밝고 환하게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만큼 무겁게 지내는 그들이지만 들은 늘 즐거워 보인다.


 그들에게는 어떤 커피를 마시게 하는 게 좋을까. 오늘의 커피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커피다. 한 몸 같은 형제에게 어울린다. 묵은 간장 냄새, 잘 마른 건초 냄새, 슬며시 퍼지는 웃음 냄새가 나는 그들에게 그와 똑같은 향이 나는 커피를 권한다. 쿠바 알투라. 묵어서 깊은 냄새, 참 좋은 냄새가 나는 커피다. 형제들의 냄새는 오래되어 깊어진 그윽한 삶의 향내다. 복잡한 기계에 열광하고 섬세하고 정교한 성격의 남자는 아닌 마미야 형제는 둘이서 오래 같이 사는 것이 언제든 마음 편한 행복이라 여긴다. 이들에게는 잘 익은 고릿한 냄새가 날 것 같다. 마미야 형제는 밥도 같이 먹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속닥속닥 비밀 얘기도 하는 둘이면서 하나인 샴쌍둥이 같다. 그런 까닭에 형제에게는 느낌이 좋고 씁쓸하고 구수한 쿠바 알투라가 안성맞춤이다. 담백하고 즐거운 인간관계, 따뜻하고 소박한 형제의 이야기에 커피맛이 깊어진다.


 한옥 카페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해질 무렵 풍경이 따뜻하다. 붉은 석양에 걸린 갓전등이 멋스러운 공간이다.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련의 과정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게 구성된 카페라는 점이 좋다. 사장님은 원래 커피를 좋아했기에 커피 여행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진열된 커피 도구들 중 핸드밀은 물 건너 여행지의 벼룩시장에서 스카웃된 것이 대부분이라니 그 낭만적 기질은 태생적인 것이었나 보다. 저렴한 원두지만 고급진 맛을 내는 쿠바 알투라를 무료로 리필해 주셔서 커피 맛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넘어져도 웃는 친구를 만나서 한잔 커피를 마시니 마음의 그늘이 걷힌다. 바람 불고 비 오는 세월을 어찌 그리 묵묵히 견디고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워내는지 감탄할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언젠가 빛날 별을 찾으려 노력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니 존경스럽다. 그런 네가 친구라서 우리는 네 주위를 돌며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 궂은일은 다 네 몫인 듯싶은데 넌 아무렇지 않다 하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제 좋은 건 네가 먼저 하자. 부디 건강하렴. 오늘의 커피는 딱 네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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