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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Mar 04. 2022

146 천천히 감염되는 마음이란

케냐 마사이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의 핀란드, 어디를 봐도 하얀 눈으로 덮여 깊은숨을 쉬는 듯한 풍경이다. 그림엽서 속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눈이 시리게 하얀 풍경이다. 처연하게 아름다운 눈, 눈이 끝도 없이 쌓였다. 간데없이 평평하고 넓은 눈 덮인 대지를 힘겹게 걷는 사람이 보인다. 여자였다가 이내 남자가 클로즈업되면서 시야에 들어온다. 힘든 일상에 무뎌져 있다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 그제야 자신의 외로움을 깨닫게 된 인물들이다. 인생의 혹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만난다. 우울증을 앓는 어린 딸이 있는 남자,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을 둔 여자가 그 인물들이다. 아이들이 캠프를 떠난 그날 두 사람은 폭설로 고립된 숲에서 만나고 서로를 깊숙이 안는다.


 영화 <과 여>, 2016.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그럼 영화를 보자. 그 인물들은 공유와 전도연, 기홍과 상민이다. 눈 덮인 핀란드를 프리미엄 없이도 볼 수 있는 19금, 청불 영화다. 글로 행위를 묘사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좋으며 그보다는 직접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떠올리니 쿡, 웃음이 난다. 여하튼 공유의 정통 멜로 연기. 기대 이상이다. 시크한 젊은이들의 사랑놀음 말고 어른들의 사랑타령이라 집중하며 본다. 별로 궁금할 게 없는 나이인데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다. 나이 들어도 어른들의 연애는 궁금하다. 말랑말랑 달콤한 어린 청춘들의 사랑 유효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으로 금지된 복잡하고 성가신 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 깊이는 웅장하지도 그리 신중하지도 아니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여곡절로 페허가 된 마음이 만나는 어른들 사랑 이야기는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엿보고 들으며 간섭하고 싶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만남, 일상이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뀌는 만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외국에서 오래 전에 잊어버린 사랑을 찾는 만남, 사회 통념이 금지하는 만남이 들어 있다. '일상을 파고든 그들의 뜨거운 끌림'이라는 티저 광고가 눈에 박히는 <남과 여>다. 


  오늘의 커피는 케냐 마사이. 예민고 작은 일에도 성가셔는 고약한 성질에 일침을 가하는 쓴맛이 난다. 까칠해지는 심상의 복잡함을 탁탁 끊어주는  커피다. 풍성하고 묵직한 케냐 레드 마운틴보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슴슴하다. 스케일이 작아도 부족하거나 약하지 않은 맛이다. 경박하고 들뜨고 조잡하다는 말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여하튼 케냐 커피 아닌가. 애잔함과 차분함이 있는 커피다. 식욕을 돋우는 연한 꿀사과의 신맛이 좋다. 달고 산뜻한 향기에 마음이 편안하고 홀가분해진다. 케냐 마사이는 냉랭한 공기를 데우는 반짝거리는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설원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만드는 남녀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마시는 커피다. 잃어버린 사랑의 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커피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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