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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Feb 28. 2022

144 꽃을 기다리는 금오도

함구미 시나브로 - 아메리카노

 속절없이 부는 바람이 좋은 금오도. 바람 앞에 속수무책. 하늘과 맞닿은 비경이 좋다. 섬에는 억지로 되는 게 없다. 기다려야 된다.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배를 기다리고 바람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파도가 조용히 말을 걸며 이제 떠나도 좋다고 허락할 때까지 기다린다. 금오도 비렁길은 해안절벽과 해안단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기암괴석과 짙은 파란색의 물빛을 보며 걷다 보면 마음이 순해진다. 걸을수록 같이 걷는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좁은 길을 어깨 스치며 걷다 보면 몸속에서 봄이 온다. 이혼 안 할 만큼 적당히 사이가 안 좋은 부부가 걷기에 좋은 길이다. 굽이굽이 벼랑을 에워싼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서로 양보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피는 일이다. 뾰족한 마음 담아두고 쫓기듯 다닐 수 없다.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다.


 붉은 동백숲에 붉은 꽃이 가득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곧 붉은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렁다리의 아찔함을 느낄 수 있는 3코스에 동백숲이 있다. 직포에서 학동으로 이어지는 3코스는 비렁길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아닌가 싶다. 해안 노송과 천연 목재길이 근사한 구간이다. 올록볼록한 바위들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조화물을 구경하는 기쁨의 구간이다. 두 다리가 튼튼한 성실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반짝반짝 닦는 구간이다. 비렁길과 함께한 금오도는 비 갠 듯 맑은 하늘, 미리 맞는 봄, 사소한 결점을 헐뜯으며 사는 각박한 생활을 다독여주는 정성스러운 곳이다.


 오늘의 커피는 함구미항 입구에 있는 시나브로 식당의 아메리카노다. 특별한 맛은 없다. 춥고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음료라 생각하자. 나른하고 시린 손끝에 온기를 주는 쌉쌀한 음료다. 시나브로는 1코스가 시작되는 초입에 자리했다. 폐교가 된 옛날 국민학교 건물을 식당으로 만들었다. 잔잔히 흐르는 80년대 음악은 이전 시절이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바쁜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방풍 부침개를 시키고 음악에 몸을 맡긴다. 여수항에서 온 이들은 함구미항으로 곧장 올 수 있다. 90분 걸린다. 돌산 신기항에서 출발한 이는 20 - 25분 만에 여천항에 닿는다. 그다음 승용차, 택시, 보도로  함구미항으로 갈 수 있다. 여튼 함구미항은 1코스 출발점이다. 따끈한 빛이 그리운 뱀이 황톳길에서 몸을 푸는 구경도 가능한 1구간임을 말하고 싶다.



 어딘가를 돌아보고 이제 어디로 간다. 돌아본 곳은 봄을 기다리는 섬이고 갈 곳은 눈물 뚝뚝 흘리며 안간힘 쓰며 사는 곳이다. 화가 나도 참고 화가 풀리지 않아도 가만히 있는 곳이다. 안아주고 닦아주며 밥을 짓고 밥을 먹고 함께 사는 곳이다. 안고 가야 할 것도 무겁고 짊어져야 할 것도 무거운 가족이 있는 생활 속이다. 가야 할 길은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불만과 불안을 삼키며 살랑살랑 서로를 존중하며 무너지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다. 시큼하니 씁쓸한 시나브로 커피 한잔, 비렁길 절경, 낚싯꾼을 부르는 바닷바람, 여수 금오도에는 느슨한 중년 여인의 정신세계를 단단히 해주는 회초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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