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미용실에 가자. 내가 사는 모습이 약하고 모자라고 초라할 때는 더더욱 가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색의 사인볼과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문이 '어서 와!' 하며 반길 것이다. 심심하고 쓸쓸하면 커트할 시간만 내면 된다. 먹고살기 위해 애쓰던 시간이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견디기 힘들다. 그러면 파마할 시간을 내면 된다. 미용실 원장님이 그 어려운 문제들을 싹둑 정리해준다. 믿기 어렵다면 꼭 미용실에 가보시라. 무슨 뜻인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니.
미용실에는 늘 이야기가 있다. 굳이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야기들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 열 길 물속보다 깊이 숨어 있는 다양한 감정, 섬세한 인간 내면의 풍경을 보고 들을 수 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는 동안 잡다하고 어지러운 마음은 사라진다.
잡지 1면은 괭이밥 사진이다. 노란 꽃이 나직하게 넓게 펼쳐져 있다. 눈이 환해진다. 마음도 밝아지면 좋겠다.
소문은 돌고 돌아 그녀에게로 갔다. 가장 가까이 있던 심 원장이발원지였다. 그리 궁금하면 직접 물을 것이지 자기 생각을 덧대 말을 키우고 부풀려 손님들에게 전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쪽 동네가 워낙 좁은지라 금세 탈로 날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아이들 아빠 이야기다. 아이들이 미성년이었을 땐 말하지 못했지만 이제 성년이니 해도 될 것 같다. 25살 때였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좋은 오후였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걸을래요? 우리의 데이트는 가벼운 걷기로 시작되었다. 결혼을 했고 애지중지하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가 부서져라 일하던 엄마의 근성을 빼닮은 나는 성실히 부지런히 살았다. 집을 사기 위해 절약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귀하게 자란 것도 아니면서 노동하는 일에 서툰 남편과 사는 일은 피곤하긴 해도 마음을 주거니 받거니 살 만했다. 감질나는 감각적 결혼생활은 아니어도 느닷없는 황당한 일은 겪지 않고 살았다. 서로의 병까지 챙기며 늙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살았다.
많이 마신 날은 아이들을 귀찮게 했다.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건 기본이고 길고 긴 연설이 이어졌다. 취기가 있으면 손찌검을 하는 사람임을 모르진 않았지만 목구멍에 술을 들이붓는 인간임을 몰랐다. 꼬부라진 혀로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행위가 해마다 심해지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유 없이 아이들을 닦고 애 먼 소리를 하는 통에 아이들은 아비를 마음으로 존경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가장으로 여기고 딱 그만큼의 고마움을 표하며 지냈다. 지금까지 까다롭지 않게 대하고 더운밥 해 먹였다. 하지만 이제 정이 안 든다. 내게 하는 짓은 차치하고 아이들한테 하는 짓은 용서가 안 된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미용실에서 듣는 이야기는 참 소설스럽다. 그럼에도 반드시 주인공이 있고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용실 원장님이자 친구인 그녀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작고 강인하게 단단히 뿌리를 내린 야생화 같다. 또렷한 자기 색이 있으면서도 뽐내지 않는 모습이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머리로 생각한 걸 손으로 만들어 내는 재주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난다. 삶을 겸허히 부지런히 사는 친구다. 나무랄 데 없다. 그녀의 복잡한 이야기를 명쾌한 언어로 써주기로 했는데 부족하다. 남의 이야기를 끌어다 편의대로 가공해서 남발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며 정성껏 썼는데 제대로 읽힐지 모르겠다.
오늘의 커피는 첫맛은 달고, 뒷맛은 쓰고 떫다. 넓고 지그시 고소함이 퍼진다. 오묘한 향이 좋은 커피다. 코스타리카 커피가 갖는 과일향과 산뜻한 맛이 조금 부족하다. 그래도 몰래 감춰뒀다가 예쁘고 좋은 사람에게만 내어주고 싶은 커피다. 온전히 향을 느끼고 맛을 아는 사람과 나눠 마시고 싶은 커피다. 오늘은 융드립으로 내려서 친구에게 오일리한 커피맛을 느끼게 해주련다. 솜사탕처럼 가볍고 부드럽다. 패션후르츠처럼 달달하고 새콤하다. 그 맛에 그녀의 시름이 녹아버릴 것이다. 그녀에게 특별한 후식이 될 것이다. 볶고 찌고 삶듯 보낸 긴 인생에 대한 특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