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글밥 먹는 사람이 되려면
코스타리카 따라주 산 파블로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고 싶다. 일상의 익숙함을 던지는 소망이 꿈틀대는 이유를 생각한다. 한 번도 혼자 산 적 없다. 흔한 기숙사, 고시원, 대학 후문 자취방에서 산 적도 없다. 공부를 못했으니 학교 기숙사에 들아갈 일이 없었다. 명함 척 내미는 직업 전선에 몸 담기 위해 애쓰지 않았으니 고시원 생활도 없다. 늘 집에서 다녔다. 독립해서 살아보지 못했다. 그때는 해주는 밥을 먹으며 적게나마 돈을 벌며 집에서 사는 것도 편했다. 결혼을 했다. 잘하지 못하는 일 속에서 휘청거리며 살다 보니 시간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그 사이 나는 가족들 밥 짓는 일이 수월해졌다. 틈이 생기니 내 자리가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쓸모의 다함을 느낀다. 무용한 사람이라는 자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기로 했다. 돈 안 되는 일만 한다는 소리를 또 들을 것이다. 그래도 글을 써서 밥을 버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거창한 꿈이 아니다.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며 내 안에 있고 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쓰고 싶다. 내 상황에 솔직해지며 구체적으로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내 언어로 가슴에 묻어둔 말을 퍼올려 타인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느낀 대로 표현하고 객관적으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일단 쓰기 위해 많이 읽어야 한다. 읽다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얻고 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담고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쓸 것이다. 책을 옆에다 쌓아 놓고 쓸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반짝거리는 말을 캘 것이다. 이렇듯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오늘의 커피는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좋은 원두를 생산하는 따라주 지역의 커피다. 달콤하다. 부드러운 맛과 상큼한 과일의 향기가 균형 잡힌 커피다. 깊고 섬세하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과장하면 심금을 울리는 매력적인 커피다. 삶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맛 보여주는 철학적인 커피라 부르고 싶다. 천칭 저울이 수평이 되기 위해서는 양쪽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 우정 등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모든 사랑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이해하려고 애쓰며 사는 일이 무겁지 않다. 소박하며 아름답다. 그렇지 않으면 더없이 쓸쓸하고 견디기 힘들다. 돌올하게 떠오르지는 못해도 제자리에서 잔잔히 살 수 있다. 서러운 기억이 물밀듯 밀려와도 봐주며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 달콤한 커피가 흔들리는 모든 사랑에게 위로를 줄 것이다. 쓰고 향기로운 맛이 피로감을 날려줄 것이다. 비록 고되고 지난한 삶이 될지라도 견디며 충실히 보내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