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소파에 몸을 던져 불편하게 누웠어도 밥이 입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눈에 초점이 풀리고 팔이 덜렁거리고 멀뚱히 있어도 따뜻한 밥과 국, 오색 나물이 차려진 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매가리 없다는 퉁을 들으며 저 아래 고인 슬픔을 불러내 걷어낼 수 있는 곳이다.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도 사라지게 만드는 곳, 엄마가 계신 곳이다. 그다지 친한 모녀 사이도 아니면서 넋 놓고 풀어질 수 유일한 장소다. 덤덤하지만 편안한 곳이다. 나의 허물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마음이 느긋해지면 엄마의 살림살이를 돌아보고 지적질하게 된다. 먼저 냉장고다. 엄마의 냉장고는 언제나 만실이다. 빈 곳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자꾸 쟁여둔단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냉장고는 시원하게 보관해서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있는 물건이다. 꽉 차서 무엇 하나 꺼내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엄마의 냉장고는 용도가 좀 이상하다. 대부분 검은 봉지에 정체불명의 것이 들었다. 둥글 납작하게 꽁꽁 얼어 냉동실을 점령하고 있다. 굵은 펜으로 정성껏 쓴 메모가 붙어있긴 하다. 드물게 방문하는 딸들을 위한 배려다. 행여 냉동실 문을 열다 발등을 다칠 수도 있다. 돌덩이처럼 무겁고 단단한 것이 툭 떨어진다. 냉장실에는 요리에 응용되어 풍미와 향미를 더할 야채나 채소는 그나마 조금 있고 고기나 생선, 우유와 달걀 같은 매일 식단에 오를 단백질 식품군은 거의 없다. 대신 찹쌀, 기장, 팥, 서리태가 플라스틱 통에 담겨 줄줄이 서있다. 딸이 친정나들이를 해도 맛있게 요리할 재료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요리되어 식탁에 오를지 모를 것들만 가득 차 있다. 엄마는 그것들을 언제 어떻게 요리해서 드시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의 냉장고에 든 야채나 채소는 최상의 품질이다. 직접 가꾸고 거둔 유기농이다. 깨알처럼 까만 비리는 손으로 잡고 깻묵으로 거름 하고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에는 그늘막으로 인공 그늘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신다. 빼곡하게 자란 상추는 반짝거리고 부드럽다. 식물들도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그래서 튼실하고 생생하다. 기장을 섞은 밥과 강된장 호박잎 쌈이 엄마가 친정나들이 한 딸에게 준 점심상이다. 속이 부댖기지 않는 담박하고 심심하고 칼칼한 밥상이다. 엄마, 고맙습니다.
오늘의 커피는 향이 짙고 포근하다. 산딸기, 블랙베리, 건자두 맛이 느껴진다. 곰살맞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작고 소박하게 살아가자 다짐하게 하는 커피다.창 너머로 석양에 물든 하늘이 보이고 나른한 상실감에 가슴이 텅 비는 기분을 느끼는 커피다. 패배자의 태도를 가진 여인이 속 터놓고 말하지 못한 비밀을 안고 전전긍긍할 때 신중한 쓴맛을 보여주는 커피다. 고소하고 부드러우나 날 선 바디감은 잃지 않는다. 차분하고 시끄러운, 우울함과 명랑함을 똑같이 가진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부족함에 대한 불안과 지루함, 좌절감이 있긴 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상심에 빠진 채 살지 않는다. 서늘한 서운함을 깔고 앉아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함께 걷고 있는 옆사람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다. 스스럼없이 드러내지 않고도 할 말은 할 수 있는 당찬 여인이다. 곧 팔순이 되는 내 엄마다. 엄마가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진다. 오늘의 커피는 그간 삶의 내력을 이야기하며 모녀가 마시는 부드러운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