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탄자니아 아루메루 내추럴

by 만델링

이기주 작가는 말한다. 책 쓰기는 문장을 정제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 깊은 밤 방 안에 홀로 있을 때 느낀 상념, 점심을 먹고 커피를 들이키며 중얼거린 말에서 가치 없는 표현을 걸러낸 다음 중요한 고갱이를 문장으로 옮기고, 다시 발효와 숙성을 거쳐 조심스레 종이 위에 활자로 펼쳐놓는 일이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런 문장을 내가 썼다면 터치펜 들고 스마트폰을 콕콕 두드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얇고 가볍지만 메모리 용량이 큰 노트북을 들고 조금 큼직한 유리창이 있는 카페에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근사한 단어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왕년에 했던 한컴 타자 연습용 베네치아를 생각하면서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글 앞에서 쩔쩔맬 때면 음악을 듣거나 밖으로 나가 걷는다고 말하는 작가처럼 나도 새로운 글을 짓기 위해 산책을 갈 것이다. 그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고 한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쓴다고 한다. 가끔은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꽃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이기주 작가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다. 내 주위에 있는 그 어떤 남자 사람도 어머니 화장대에 꽃을 올려놓지 않는 걸 알기에 나는 작가가 궁금하다. 나는 늘 모호하고 반복적인 단어를 들고 정확하고 간결하고 서정적인 맛이 가득한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니 글이 될 리 없다. 부족한 어휘력과 모자란 상상력으로 줄줄 읽히는 글을 쓸 수는 없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친구라도 있어야 어떤 이야기가 열릴 것이다. 하루치의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밥벌이의 고단함을 내려놓는다. 비로소 혼자 쉬며 억척스러웠던 삶의 흔적을 주섬주섬 글로 풀어낸다. 잠을 놓쳐 눈이 따끔거리고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새벽 풍경을 지켜보며 희뿌연 아침을 맞는다. 아, 이런 글은 역시 구리다.


낮 기온도 영상 10도 정도로 뚝 떨어졌다. 해뜨기 전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서산으로 해가 가고 난 저녁이 되니 피로와 고단함이 밀려든다. 하루가 다 가버린 것 같다. 해가 빨리 저무니 적막함도 금방 내린다. 쓸쓸한 마음에 답 없는 질문들이 떠오른다. 여자, 딸, 아내, 며느리, 언니, 엄마 말고 나를 설명하는 다른 단어를 얻을 수 있을까. '작가'라는 단어를 달고 싶다. 생업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커피는 시큼한 향과 달큼한 맛이 근사하다. 말갛고 서늘한 쓴맛이 좋다. 웬만한 일에는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도 반색하며 맞는 맛이다. 갈색 빛깔의 커피에서 부드러운 식빵 냄새가 난다. 말랑하고 두둥실한 마음이 된다. 어떤 인생을 보내게 될까, 궁금해진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막연한 시간이 막연함으로 흐른다. 막막함이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진다. 이런 마음을 가진 모두에게 탄자니아 아루메루를 선물하고 싶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슬픔, 조바심, 부담감 같은 압박을 누를 있게 한다. 갈피를 못 잡고 회의감에 젖는 마음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커피다. 부족해도 고요하고 풍요롭게 사는 법이 있다고 말해주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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