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비록 그랬더라도

탄자니아 피베리

by 만델링

아버지는 유리점을 하셨다. 자영업인 관계로 퇴임이라는 걸 하지 않아도 되는데 1997년 자발적 퇴임을 하셨다. 가부도 위기의 한민국이 IMF 제금융 신청했던 그해다. 국가부도 위기와 등의 연관이 없었지만 가게문을 닫았다. 아침에 가게문을 열고 늦은 저녁 문을 닫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고 중간에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하셨다.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고 4남매의 학비를 부으셨다. 의 팔순인 아버지는 건강하시고 부지런하시지만 성가시고 힘든 일은 하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도 힘들고 어려운 일은 엄마가 다 하셨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깨끗하게 다림질된 옷을 입고 집에서 세 끼 식사를 하신다. 후식으로 달짝지근한 커피 믹스까지 타 달라고 해서 눈치를 받는다. 그리고 조그만 텃밭에서 잠깐 호미질을 하고 푸른 것들에게 물을 주는 노동을 할 뿐이다. 이런 아버지를 보면 그동안 엄마의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아린 세월이었는지 헤아리게 된다. 물론 그런 삶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한다. 살면서 겪은 엄마의 절망에 대해서는 더욱 모른다. 눈물과 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철이 없었고 내가 편하면 만사가 다 좋은 것으로 알고 지냈으니 엄마의 곤란과 슬픔은 내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4남매의 맏이다. 막내가 티격태격 삐걱거리며 불안한 생활을 하는 걸 제외하면 우리 남매는 모두 고만고만하게 순탄하게 살고 자기만의 가족 문화를 만들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노후를 대비하며 지내고 있다. 모두가 엄마의 희생으로 받은 따뜻한 자기 자리 찾기가 아닌가 싶다. 삶을 엮어가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이라는 날줄이 교차되어 만드는 무늬는 불안하고 쓰러질 듯한 순간을 붙들어주는 당산나무 같기도 하다. 혹은 심한 감기를 앓을 때 내과에서 는 마늘 영양제 같은 수액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긍정적이고 즐거웠던 기억보다 어렵고 불안했던 것들이 되려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됨을 엄마가 깨우쳐주신 것 같다. 가을이 저무는 것이 아쉬워 마음이 헛헛해질 때는 지난날의 묻어두고 싶은 눅눅한 기억을 꺼낸다. 아렸던 시간이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이 된다. 그 시간을 붙들고 잊지 않으려 애써서 노력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커피는 동생들에게 별로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마신다. 같이 놀던 그 시절이 그리워져 마신다. 덧없이 사라진 것들이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어서 느적느적 마신다. 다 늦어 그나마 다행으로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으로 마신다. 속에 적은 가능성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걸고 마신다.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고 적포도 향기와 오크통 향이 난다. 점잖고 시큼하다. 살짝 몽 냄새가 난다.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식 곁을 지키는 반듯하고 고단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깊고 낮은 쓴맛이 느닷없는 쓸쓸함을 녹인다. 가을 풀이 마르고 나뭇잎이 바스락하는 소리가 섞인 커피다. 진하게 마시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말 많고 야박하고 탈 많은 세상에서 자식들이 단단히 여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때까지 부단히 배우기를 바라는 커피다. 저무는 시간에도 강단지게 살아가라고 위로하는 커피다. 어둡고 어두운 시간도 지나가리라는 걸 가르치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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