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나도 모르는 일이 일어난 다음에

카메룬 블루마운틴 오쿠

by 만델링

너무 추운 걸. 걷지도 않았는데 관절이 아프다. 일교차가 커서 코도 맹맹하다. 자기 가을이 끝났나 싶을 정도로 춥다. 바람이 차고 손가락이 곱을 정도로 싸늘하게 냉기가 도는 쾌청한 날씨다. 이것도 하기 싫고 저것도 하기 싫다. 그래도 바람은 좋다. 고분고분 얹히는 바람이 어깨를 쓰담쓰담한다. 황색으로 물든 들판이 넓게 흔들린다. 바람이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과 흔들리는 들판이 가을이 끝나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아 허전하다. 삶이라는 것도 저렇게 흔들리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마음은 바스락하다. 푸르렀던 것들이 바래지는 속도에 비례해서 풍선처럼 푹 꺼진다.


퀼트를 하고 온 날은 색감이 예쁜 천조각이 눈에 아른거려 하루 종일 배가 부르다. 초급 퀼트반이라 조각 천 배열, 재단, 바느질 모두가 서툴지만 한 땀 한 땀 홈질로 이어가는 재미는 초보라고 없지 않다. 손끝으로 만들어 낸 토트백과 파우치, 보조가방과 필통, 동전지갑과 카드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퀼트 선생님을 보면 감각적이고 세련된 도안을 그리는 재주에 감탄한다. 나는 내심 완성된 그녀만의 물건에 아니 작품에 눈독을 들이고 욕심을 낸다. 자신만의 유니크한 물건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것 같다. 누구도 같은 걸 가질 수 없고 손으로 만어 낸 것은 오래오래 주인 곁에서 향기를 담고 각별한 느낌으로 같이 살아가지 않겠는가. 언제쯤 그런 근사한 것들을 만들 수 있을까 가늠해보지만 글쎄다. 그럼에도 굳고 곱은 손으로 한 땀씩 잇는 바느질은 시간과 더불어 차츰 자리를 잡고 단단해졌다. 덕분에 동그랗고 납작하며 채도가 높은 마카롱 같은 동전지갑과 붉고 화려한 작은 손가방은 그리 멀지 않은 날에 가지게 될 것 같다.


오늘의 커피는 카메룬 블루마운틴 오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최고라지만 아라비카 커피가 처음 시작된 곳은 중앙아프리카 카메룬이다. 최초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에 뒤지지 않는다. 블루베리, 건포도의 신맛이 가득하다. 햇빛에 잘 마른 바삭한 고소함이 있다. 진한 갈빛의 커피는 편안하고 낙천적인 느낌이다. 윤곽이 뚜렷하고 자신감과 당당함이 묻어 나온다. 삶이 뭔지 안다는 듯 징징거리는 나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가기 마련, 작은 것들에 너무 애달복달 말지어다 한다. 내 삶 곳곳에 숨어있는 지뢰를 밟지 않고 피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친다면 내 삶이 엉성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커피콩 빵과 같이 먹는다. 작고 고소하고 거친 크림 맛이 나는 빵이다. 주전부리와 같이 하는 커피는 좋아하는 친구와 호호거리는 것처럼 사람을 즐겁게 한다. 역시 삶에서 친구는 뺄 수 없다. 기쁘나 슬프나 함께 있다. 이리저리 휘둘려 동동거리는 생활 속에,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친구는 머문다. 목이 메고 늘어나는 주름에 한숨이 섞일 때 쓸데없는 걱정 한다며 위로 대신 핀잔을 주며 놀리는 것도 친구다. 커피를 마시며 애잔한 마음이 들 때 그때 생각나는 사람 또한 친구다. 카메룬 오쿠는 그런 친구 같은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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