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워낙 소설이라는 게 인생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말장난이나 떠들어대는 혓바닥 같은 거라서. 아니면 불쌍한 사람들 허파에 바람이나 불어넣는 풍로 같달까. 나한테는 안 맞더라고. 김연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실린 「우는 시늉을 하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는 귀에 거슬리는 말인데,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말장난이나 떠들어대는 혓바닥 같은 거라는 표현이 너무 맘에 들어서 몇 번이나 읽는다.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시를 읽는 국어 시간에는 늘 딴짓을 했지만 현대문학이나 고전문학에서 소설을 배울 때는 정말 진득이 집중하며 공부했었다. 특히 남녀상열지사를 고전문학에서 배우고 현대문학에서 비슷한 주제를 가지는 소설을 찾아서 읽을 때는 어찌나 재미있든지 교과서 스무 장 정도의 분량을 공책에 베껴쓰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이름을 바꾸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을 주변의 아는 곳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새로운 창작을 하는 재주는 없어도 각색을 하는 재주는 있었는지 바꿔서 만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읽어주면 즐거워하고, 주인공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달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군데군데 어쭙잖은 삽화도 넣어서 미니북을 만들기도 했다. 창작과 비평의 수석 편집인인 듯 말이다. 소설은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현실에서 일어날 듯한 일이어서 읽을수록 재미났고, 이야기를 갖다 붙여 새롭게 이어가는 것도 재미나서 어른이 된 지금도 소설은 열심히 자주 읽는다. 하지만 김연수 소설 속의 영범이 아버지는 불쌍한 사람들 허파에 바람이나 불어넣는 풍로 같다고 소설을 타박한다. 피식~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웃음 같은 바람이 샌다. 맞는 말이지만 허파에 바람을 불어넣어 현실의 무게와 고된 노동의 강도가 덜해진다면 그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꿈을 꾸는 일도 안 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니 말이다. 여하튼 소설 예찬론자로서 김연수의 문장에 반하고 허파에 바람 든 소리에 즐거워서 까무러칠 것 같다. 남자이면서 여자의 문장을 이렇듯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설가가 김연수 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구지 훈쿠테. 구수한 밤 향과 부드러운 노란 호박 고구마 맛이 난다. 제주 감귤의 속살처럼 상큼한 신맛은 얼마나 일품인지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커피라는 까만 액체의 오묘한 맛은 카페인에 의한 각성과 후각을 자극하는 향,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왈칵왈칵 쏟아지는 생각의 꼬리물기가 복합적으로 엉겨 나오는 것이리라. 시다모 구지 훈쿠테는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첫 문장을 쓰고는 이내 재능이 없음을 알고 빨리 포기하고 소설 읽기에 집중하며 마시는 응원의 커피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문장을 쓰고 이내 어두워진 표정으로 커피만 홀짝거리는 심정을 알까. 조잡한 글을 들고 독자마당에 실리기를 기다리던 때와 교지에 실리길 바랄 때가 있었다. 물론 결과는 비참했다.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지난날이란 이렇듯 쏜살같이 흘러버렸다. 그때 좀 더 끈질기게 노력하지 않은 미련이 남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마음에 없는 척한다. 은근한 귤향이 달뜬 마음을 살짝 내리누르는 쓴맛에 기대어 이야기 속으로 속살속살 퍼진다. 내가 쓴 이야기도 환한 달밤에 드리워져 널리널리 퍼지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