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어쩜 이리도 이름 붙은 예쁜 봉투들이 많이 오는지. 돌아가신 분들은 삽상한 바람과 한들거리는 붉고 노란 단풍, 파란 하늘이 드리워진 가을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추석날부터 거의 매주 수시로 부고장이 날아온다. 하얀 봉투에 금목서 꽃잎 우표를 다소곳이 붙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찌~잉 하는 소리와 카톡 하는 소리에 묻어서. 양가 부모님의 아슬아슬한 경제력이 문제지 돌아가신 분들이 무슨 잘못이라고 부고장을 탓할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걱정이다.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런 형식적인 의례라는 것이 간당간당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월급쟁이 살림에는 참으로 벅차고도 남음이 있으니 말이다. 에고, 그러한들 어쩌리오. 마음으로는 강하게 부정해도 어쩌지 못하고 그런 구태를 견뎌내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까맣고 숙연한 글씨가 적힌 하얀 봉투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내리 살핌에 유일하게 종이돈의 여성 모델이 된 신사임당을 준비한다. 가볼 수 없는 그곳으로 간 분의 명복을 빌면서.
올가을 세상을 먼저 떠난 분들은 나이로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순서대로라면 받아들이기 쉬울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차분하고 부드러웠다고 기억되는 분, 늘 그냥 참고 참으며 주위를 챙기기만 하던 분, 남편을 두고 갑자기 가버린 분, 매일매일 쓸쓸하다며 말하더니 먼저 간 남편을 따라 주무시다 가신 분. 시월에 뒷모습을 보여준 분들은 전부 여자분이라 더 애잔하다. 영정 사진 앞에 까만 옷을 입고 선 상주들의 낮고 깊은 울음은 슬픔이 가라앉아 고요하기까지 하다. 상주들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의 표정들은 각각 다르다. 고인이 된 분과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정겹게 도란도란한 삶을 살았는지 말해준다. 후련하다, 무거운 짐에서 놓여난 기분이라고 말하는 상주를 만나지 않은 것도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다. 두 번 절하는 동안 겸손해지고 쓸쓸해진다. 아, 삶이란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뿐이구나.
오늘의 커피는 케냐 무랑카. 중강배전 커피의 대표주자로 방방곡곡 이름을 날리는 커피다.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의 말을 빌리면 경상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상위 커피란다. 짙은 양념류가 발달한 경상도는 신맛이 도는 커피보다 묵직하고 고소한 맛이 퍼지는 커피를 선호한단다. 계피나 산초, 방아 같은 향신료를 사용하는 탓에 가벼운 커피는 선호도가 낮단다.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린다. 여하튼 지금은 분홍, 노랑, 초록, 보랏빛의 작은 마카롱을 눈으로 보며 마신다.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과 겉의 바삭한 느낌이 좋은 마카롱이다. 머리칼이 짜릿해지는 단맛에 먹기를 그만 두려 하지만 배가 부르지 않은 탓에 자꾸 손이 가는 과자다. 무랑카는 묵직한 느낌의 남성적인 커피지만 좋은 단맛과 길게 남는 향이 여성적이다. 잘 갈린 원두에 물을 부으면 체리 향과 캐러멜 향이 묵묵히 퍼진다. 붉은 화산토에서 재배된 영향으로 기분 좋은 스파이시함이 있다. 관능적인 과일 향이 톡 터지는 커피다. 마카롱과 먹으면 슬픔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나른 나른 졸리는 향기가 가득 찬다. 케냐 무랑카는 중독성이 강하고 들뜬 분위기를 차분하게 해 준다. 해 질 녘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 때 외딴 절에서 들리는 풍경소리를 닮은 커피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신과 가깝다는 그곳은 어떨지 상상한다. 상실감에 울지 말라며 등을 쓸어주는 행위도, 떨고 있는 두 손을 잡아주는 행동도 가닿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침묵하며 애써 위로를 전한다. 커피 향에 울음이 잦아들기를, 울음을 참는 상주들의 등이 시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