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면

에티오피아 구아스피리 내추럴

by 만델링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고. 그렇게나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한 말이니 믿어볼까? 살랑거리는 갈빛 바람, 대지와 비스듬히 쏟아지다 건물 모퉁이에 부딪혀 잘게 부서지는 햇살이 가을이 가기 전에 노는 건 어때? 하며 묻는다. 사는 즐거움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다, 늘 피곤하고 시들한 주부 우울증 중기의 엄마들은 여행박사와 상담하라는 광고가 귀에 박힌다. 11월은 백신 접종 확인서만 있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달이라고 간지럼을 태운다. 용기만 가지고 떠날 수 있다. 그럴 리 없다. 역시나 돈의 문제다. 돈도 없고 용기도 없는 사람에게 여행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우리네 삶은 늘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하찮은 것과 대단한 것, 겉과 속이 같은 것과 속에 든 것이 밖으로 보이지 않는 음흉한 것, 시시한 것과 심각한 것이 경계도 없이 한데 섞여 오묘하게 버무려져 있다. 이런 복잡함을 여행이 간결하게 정리하여 돌파구를 마련하여 줄 수 있을까? 여행, 이응으로 시작하여 동그랗게 발음되는 부드러운 단어다. 유쾌한 울림으로 다가와 한가로움을 주는 단어. 아~ 떠나고 싶어라.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홀가분한 여행을 그려본다. 생각만으로도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 된다. 반들반들 윤이 나고 근심이 사라지는 마음이 된다. 나를 위해 꽃을 사는 낭만적인 기분이 된다. 기대감을 버리고 밋밋하게 사는 삶에 새로운 이유를 덧대어 동적인 생활이 되게 한다. 이렇듯 여행이 주는 좋은 점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지금은 덜컹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어제 했던 그 일을 또 한다.


오늘의 커피는 구아스피리 내추럴. 성심당 롤케이크와 마신다. 한 모금의 커피가 입안에 닿는 순간 롤케이크의 부드러움과 아련한 쓴맛에 움찔한다. 녹아내리는 생크림이란 이런 것이구나, 커피의 쓴맛이란 본래 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글로 쓰는 맛에 대한 표현은 한정된다. 부드러움이란 것도 정도가 있고 쓴 것도 더하고 덜한 정도가 있는데 지금 입안의 이 느낌은 설명할 수 없다. 단순하고 정돈된 깔끔한 맛이라고 하면 건조한 맛이 느껴지고 화사한 스커트에 심플한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이라 하면 능큼거리는 향기에 어질 한 꽃 맛이라 여길 법하다. 에티오피아의 화려한 원주민 의상과 햇빛에 그을린 얼굴을 한 사람들, 커피나무가 자라는 고원의 녹음이 어우러진 맛이라 성급히 단정 짓는다. 총천연색 맛을 자연스럽게 내보인다고 하자. 꾸밈과 장식은 없다. 무방비 상태에 드러나는 자신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맛이다. 오늘의 커피는 일상의 불평일랑 그만하라고 한다. 당차고 당돌하게 명백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소리에 따라 사는 게 답이라고 한다. 어른처럼 의연하고 당당하게 소심과 무심은 던지고 따뜻하게 살라고 말한다. 희망 없이도, 내 몫을 주장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조근조근 설명하는 커피다. 하지만 하찮은 농담 같이 들리니 이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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