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갓 지은 밥 위로 뜨거운 김이 솟는다. 어머님이 지지난 주 수확한 햅쌀을 보내셨다. 쌀알이 또록또록하고 반질반질 광택이 나며 투명하고 탱글탱글하다. 금이 가거나 깨진 쌀알이 없다. 찬물에 빨리 씻어서 다시 새 물로 씻기를 반복해 밥을 짓는다. 햅쌀이라 물의 양은 1:1.1의 비율로 한다. 불리지 않고 센 불에서 짓는다. 공기에 담긴 밥은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며 반짝거리고 씹으니 차지고 달다. 반찬이 필요 없는 밥이다. '단군 이래 최상'의 밥이다. 내 손으로 하는 일 중 완벽에 가깝게 할 수 있는 것이 밥 짓기다. 산에서 코펠에 짓는 밥도 삼층이나 설익은 밥이 아닌 쿠첸 압력밥솥을 이용해 지은 어머니표 집밥 같은 밥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정말 밥 짓기 하나는 잘한다. 불의 종류와 밥솥의 재질과 크기에 상관없이 차르르 윤기 흐르는 밥을 짓는다.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 있고 촉촉한 밥을 지을 수 있다. 자랑이다. 이참에 이천 쌀밥 명인전에 도전해볼까 싶다. 볕이 좋아 베란다에 던져두었더니 우엉과 토란대가 낭창낭창 잘 말랐다. 건채소로 감칠맛 있는 나물을 만들어 푸짐한 상을 차린다. 버섯 불린 물로 끓인 된장국도 있다. 와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는 밥상이 완성되었다. 같이 한 술 드셔도 됩니다.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좋은 날이다. 사소한 귀찮음으로 하루가 분주하다. 반백이 지나서까지 사는 일은 분주하고 특별히 반짝거릴 것이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좀 쉬엄쉬엄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분주함으로 깊어 가는 가을의 쓸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커피 향으로 열린다.
오늘의 커피는 브라질 몬테알레그레. 달콤 새콤 신맛은 없다. 노릇노릇 구워진 빵 껍질 맛이 난다. 약간의 소금기가 배어 있는 감칠맛이 난다. 풍미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고소한 맛과 쌉싸래한 맛의 조화가 좋다. 자주 찾아오는 친구에게 내도 좋고 멀리서 어려운 걸음 한 노모께 드려도 칭찬받을 커피다.
원두를 갈아 고노 드리퍼에 핸드드립으로 내리자. 단맛을 느끼고 싶다면 거기다 청귤 설탕 저림 발효액을 두 스푼 섞어 마시자. 지금 같은 환절기에 딱 좋다. 감기 예방 효과는 덤이다. 그러면 이름을 바꿔 불러야 되겠다. 브라질 청귤 블렌드 커피. 뜨겁게 마시면 산뜻한 청귤의 새콤하고 달달한 맛이 스며 브라질 커피의 구수하고 쓴맛이 부드럽고 향기로와진다. 누적된 피로로 스멀스멀 감기 기운이 밀려올 때, 밤사이 내린 이슬이 또롱 또롱 달려 햇빛을 반사시키고 냉랭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 모닝커피로 마시면 두통이 사라진다. 묵직한 몸이 빨리 깨어나며 활동하기 좋은 상태로 유연해진다. 캬~ 하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가 펴지며 두 다리가 저절로 땅으로 쭈우~쭉 단단히 버텨진다. 반복되는 일상의 시작이 새롭게 느껴지며 가슴이 두근두근 즐거워진다. 이런 커피는 병에 담아 친구들에게 보내어 같이 마시고 싶다. 상쾌한 청귤 향과 심심한 브라질 원두향이 가을 하늘 위로 만국기처럼 펄럭 펄럭 진하게 퍼질 것이다. 파란 하늘에 싱그러운 귤향이 구름처럼 몽글몽글 맺힐 것 같다.커피 녀석이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준다.의기소침한 내게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한다. 고맙고 기특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