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전국시대다. 마트에 파는 커피만 해도 그 가짓수를 헤아리는 일은 한나절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대형 마트에서는 어떤 커피가 지존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지 모르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나에게 조지아 고티카가 미뢰 세포를 활짝 깨우며 능청스럽게 품으로 들어온다. 늦가을임에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니 드립으로 내려 따뜻하게 마시는 커피도 좋지만 냉장 보관된 마트 커피에도 손이 간다. 시원하게 쭉 간편하게 술술 마실 수 있어서 참 좋다.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맛이다. 근래에 마트 커피를 즐기게 된 이유는 단순히 편하다는 실용성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커피는 여느 커피 전문점에서 내리는 커피보다 맛과 향이 월등한 제품이 많다. 사람이 느끼는 다섯 가지 맛 외에 풍성한 향을 첨가해 까다로운 소비자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트 커피는 산책길에 가볍게 손에 들고 걷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마시는 기쁨을 준다. 그냥 걷다가 소탈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다. 깔끔하고 심플한 맛의 커피라면 더 좋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한 모금씩 마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신이 잘하는 것을 생각하며 마시면 의외로 더욱더 맛있을 수 있다.
오늘의 커피 조지아 고티카는 안데스 고산지에서 자란 커피콩을 일일이 핸드픽해서 사용한다. 일교차가 큰 안데스 고산지대는 커피 콩이 천천히 익어서 단맛이 강하고 향이 풍부한 원두로 유명하다. 향을 잘 보존하기 위해 체리의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깨끗하게 씻는 워시드 가공을 하는 것도 특징이다. 일단 원재료가 좋은 셈이다. 혀로 느끼는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으로 단순하지만 코로 느끼는 향은 아주 많기에 커피에 향이 더해지면 더 많은 맛으로 느낄 수 있다. 고티카가 향기의 커피인 이유다. 마트에 조지아 고티카는 6종이 있다. 그중에 아로마 라테가 인상적이다. 오늘의 커피는 1등급 원유와 고소한 맛을 내는 원두가 서로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거기다 껍질은 결이 거치나 속은 노란 듯 초록빛으로 버터 같이 부드러운 아보카도의 애잔한 맛이 향으로 더해져 세련되게 다가오는 커피다. 가볍고도 깊이 있는 맛이다.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향기가 난다. 넉넉한 품성과 맑은 눈을 가진 친구랑 마시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친구라면 더 좋겠다. 단발머리에 분홍 꽃핀을 꽂고 뛰어다니던 그 친구라면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매 순간 뒷걸음질 칠 때 뒤에서 떡하니 막아주던 그 애라면 샐쭉 샐쭉 웃으며 하루 종일 같이 마실 수 있겠다.
오늘의 커피는 버럭 할 만한 일도 아닌데 성깔을 부리며 가시 돋친 말을 던진 상대에게 화를 내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솎아내지도 못하는 이에게 싸우지 않는 이유를 묻는 커피다. 기도 안 차는 말에 그냥 묵묵부답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커피다.무슨 말이든 다 듣고 다 알겠다고 말하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