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커피에서 유월의 미지근한 바람과 개망초 같은 노란 계란 프라이의 바삭한 맛이 난다. 강한 햇살을 등진 방에서 거울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자는 정신이 밖으로 나갔다는 말을 듣기에 적합하지만 나는 가끔 거울을 보며 혼자서 커피를 마시곤 한다. 거울을 보면서 눈웃음을 짓고 커피잔을 들고 건배도 하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여배우처럼 세련되고 우아한 동작을 해보기도 한다.
어릴 때는 거울 보며 놀기를 좋아했었다. 우리 집은 유리점을 했다. 가게에 크기가 다양한 거울들이 걸리고 세워져 있었던 탓에 전신 거울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노는 시간이 많았다. 거울을 보며 국어책을 큰 소리로 읽기도 하고 음악 숙제를 한다고 거울 앞에서 손을 모으고 노래 부르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민학교 다닐 때는 가수가 되겠다고 당차게 다짐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한여름밤의 꿈이다. 고음부에 이르면 반음 낮은 음정과 존재하는 모든 노래를 반박자 느리게 부른다는 것을 자신만 모르는 태생적 음치와 박치인데 말이다. 오후 내내 거울을 보고 놀았더라도 꼭 한 가지는 해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손을 댄 거울은 반드시 닦아야만 했다. 손님에게 파는 물건인 관계로 마른 수건으로 손자국을 닦는 노동을 해야 했다. 감정이 무르익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거울을 닦는 일을 해야 하는 동화책 속의 재투성이로 배역이 오가는 어릴 적 놀이였다. 어른이 되어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된 것은 아버지의 유리점에 있던 수많은 거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의 커피는 눈을 감고 기억하려 애 써지 않으면 한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맛이다.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 김을 내며 끓고 있던 팥죽 같은 색으로 커피 잔에 담겨 찰랑거린다. 무언가를 손에 쥐기 위해 참고 견디며 살아내는 삶을 맛으로 표현하면 오늘의 커피가 된다. 오늘의 커피는 경쾌하고 건조하며 바삭거린다. 조용하고 느린 맛이다. 잠시 머뭇대며 쉬면서 마시는 커피다. 혼자 놀아도 놀이는 여전히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