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반가움과 푸근함의 대명사다. 그녀가 베푸는 친절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다. 나는 마치 친정 엄마의 냉장고를 털어가는 덜 자란 딸 인양 그녀가 해주는 것은 뭐든 그냥 부담 없이 받게 된다. 그녀 앞에서는 별것 아니라는 그녀 말을 제대로 믿어 버리고 염치없이 구는 내가 된다. 이제는 받기만 하는 내가 너무 익숙해서 뻔뻔하다는 생각도 안 든다. 괜한 허풍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그렇다. 그녀는 또한 영발의 대가다. 아파트 정문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하루 만에 아이들 학원비 정도는 벌 수 있는 영발을 자랑한다. 가장 잘하는 것은 꿈의 해몽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로 보는 생활 점이다. 그녀의 수준은 사물이나 사람의 특징을 한순간에 파악해내는 신기에 가까운 감각이다. 처음 보는 아이가 울고 있는데 이유도 묻지 않고 우는 이유를 알아차리는 정도라고 할까? 궁금해서 시간이 지난 뒤 구체적으로 물었다. 들어보니 영험이 있어 그런 기운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자세한 관찰에서 미루어 짐작하는 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작은 습관을 꾸준히 관찰하면 미세한 변화도 감지하게 되고 그러면 다음 일을 예상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명리학자를 찾아 멀리 갈 필요도 없겠다. 사주를 푼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실력은 그녀도 충분하니까. 신산한 마음 정도는 척 읽어내니까. 수(水 )의 기운이 충만한 나는 욕심과 두려움을 버리면 읽히지 않는 글은 쓰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믿기로 한다. 그녀에게 복채를 건네고 넌지시 내 인생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이야기나 들어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좀 심드렁하다. 세상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려준다. 굳이 자신에 대해 알릴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듬성듬성한 가을 풍경이 스치는 커피다. 풍부하고 은은한 향이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향은 깊고 진해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의 모퉁이 담을 덮은 붉은 덩굴장미가 보인다. 달달한 쓴맛이 펄럭 펄럭 온몸에 퍼진다. 잊고 지내던 그리운 이들이 떠오른다. 맨송맨송한 얼굴 같은 마음으로 심드렁하게 대했던 이도 보인다. 짙은 갈색 빈티지 식탁에 앉아 마시고 싶은 커피다. 작고 예쁜 조명등의 은은한 불빛이 있으면 더 맛있는 커피가 될 것이다. 뜨거운 브라질의 열정이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오묘한 신맛과 고소함으로 나타난다. 구수하고 짭짤한 쓴맛이 나중까지 혀 끝에 남는다. 오롯이 나를 위한 것들이 무언인지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커피 브라질 세라 다스 트레스 바리스는 다정하게 보듬는 그녀의 마음을 닮았다.소소한 기쁨을 안겨주는 안식처 같은 구수한 커피다. 그녀랑 같이 커피를 마시면 맘 상한 일도 속으로 난 역정도 사라진다. 울퉁불퉁한 마음도 맨도롱해진다. 쌀쌀한 기운이 옷을 파고들 때 한기를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마침 지금이 맛있게 마실 때다.달콤한 쓴맛, 기쁨의 신맛, 같이 맛보는 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