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거든

탄자니아 모시 AAA

by 만델링

기가 점 무거워진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비가 쏟아진다. 근래에 보지 못한 구름빛이다. 먹빛 하늘 아래 쭉 뻗은 나무는 알로록달로록 더 선명해진다. 계절의 오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순간이다. 분주한 빗방울 소리에 고요한 변화가 숨은 듯 드러난다. 가을은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저만치 찬 바람이 부는 언덕에 서서 저물어 갈 것이다. 계절의 바뀜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가치를 묵묵히 지키는 이들처럼 경건하다. 떻게 사느냐고 묻고 싶은 이가 있다. 뭐 하며 지내냐고 묻고 싶다. 고요하게 처연하게 한때 좋아했던 이를 아직도 그리워하며 사는지 물어보고 싶건만 돌아올 대답이 허무할 것 같아 그만둔다. 삶이 무너지는 일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되는가 싶기도 하다. 우두커니 상념에 빠질 때마다 그녀가 궁금하다. 아, 궁상떨지 말고 내 일이나 제대로 하자.


오늘의 커피는 탄자니아 모시 트리플 에이. 이름이 참 정겹다. 매끈한 우엉 뿌리, 탄력 있는 토란대, 흙 묻은 고구마가 아스팔트 위에 펼쳐진 풍경처럼 따뜻하다. 정겨운 늦가을 모습이 들었다. 한가롭고 느긋한 모습이다. 졌다 다시 핀 코스코스가 저공비행하듯 흔들리는 아련한 모습도 담겼다. 가을이 스러지고 있음을 알리는 커피다. 뜬금없이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라고 쓴 문정희 시인의 시구가 생각나는 것도 가을밤이 쑥덕쑥덕 지나가기 때문이다.

탄자니아 모시는 지나가는 가을밤을 아쉬워하며 싸르륵거리는 풀벌레 소리를 감상하며 마시는 커피다. 초나흘 초승달처럼 환하고 그윽한 쓴맛이 도도하다. 산뜻한 신맛이 여름 과일을 얼려 먹는 듯한 스파이시함으로 목구멍에 채운다. 아이스로 큰 잔에 가득 마시면 좋을 커피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진솔한 모습이 보이는 다부지고 따뜻한 느낌의 커피다. 너울너울 퍼지는 고소하고 쓸쓸한 향이 일품인 커피다. 탄자니아 모시 AAA는 특별히 허무했던 날을 특별하지 않게 기억하는 맛이다. 그래, 까짓것 좀 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며 가만가만 위로한다. 왠지 짠한 마음이 생기려고 한다. 지긋지긋한 변덕스러운 마음에서 놓여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딘가 숨어 있다가 돌연히 나타나는 미운 마음도 잠시 주춤해진다. 이제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무게를 알겠다. 오늘의 커피는 울컥하는 된 마음을 놓게 한다. 이제는 제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사소한 다짐 하나를 꼭 쥐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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