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지방에 갈 때 꼭 들르는 서점이 있다. 교토의 번잡한 관광지에서 한참 떨어진 이치죠지라는 동네에 있다. 케이분샤다. 짙은 갈색의 빈티지 나무 책장이 근사한 서점이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으면 더욱 재미있는 공간이지만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다양한 책과 음반, 수공예품이 시선을 끈다. 은은한 불빛 아래 조용히 나작하게 통로를 돌아다니면 기쁘다. 한참 동안이나 머물러도 된다. 시끄럽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맘에 드는 책을 다 읽어도 괜찮다. 책장과 책장 사이로 상쾌한 강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독립출판물도 많고 신진 아티스트들의 전시도 한다. 책과 사람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내 집에 있는 책도 서점처럼 분류해 보면 재밌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내 집에는 여분의 공간이 없다. 책이 차곡차곡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제별 분류, 꼭 해보고 싶다. 테이블과 의자, 책뿐인 공간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 서점 주인이 된 기분이 되지 않을까? 한 달간 세계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복권에 당첨된다면 교토에서 살아보고 싶다. 부표처럼 떠 있는 마음으로 낯선 곳에서 살면 새로 태어난 기분이 될 것 같다.골목골목 삶과 철학이 녹아든 책방을 찾아다니고 싶다. 마음에 드는 동네에서 오래 머무르며 글을 쓰는 상상도 한다.
오늘의 커피는 쓰기만 하고 시기만 하고 숭늉 같은 맛이다. 가늘게 분쇄했고 뜸 들이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다. 씁쓰름하면서 구수하다. 향긋한 커피 한잔 할까요? 청하기엔 민망한 커피다. 제대로 내렸다면 아주 파워풀한 커피다. 민감한 이들은 포도향을 느낄 수 있다. 야무진 발걸음이 느껴지는 커피다. 종이책을 들고 짧은 휴식 시간을 꽉 차게 보내는 이들에게 주고 싶다. 빠릿빠릿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들도 같이 마시자. 무리하지 않으면서 일 잘하는 사람을 닮은 커피다. 매끈하고 달콤한 메이플 시럽 맛을 전할 것이다. 그냥 하고 있는 일인데 잘하는 이들이라면 틀림없이 좋아할 커피다. 오늘의 커피는 유쾌하고 섬세하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뚝심도 있다. 주변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고 같이 일하는 사람을 빛나게 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낫다는 훈계를 한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한 시각, 집으로 가지 않고 도로에서 서성거리는 마음이라면 꼭 이 커피를 마셔보자. 허름한 마음에 어떤 믿음이 차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