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하루치만 울고 뚝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셀링가 W

by 만델링

길냥이가 선물을 주고 갔다. 꽤 큰 녀석이다. 골목에 한 번씩 보이는 시궁쥐일 것 같다. 주차된 차 밑에서 누런 얼룩무늬 냥이를 여러 번 봤다. 크리고 앉은 녀석이 행여 차에 치일까 차를 빼고 넣을 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먹이를 준 적도 없고 살갑게 불러준 적도 없는데 녀석이 떡하니 기절시킨 쥐를 놓고 힐 껏 거려서 적잖이 놀랐다. 그 자리가 맘에 들었다는 뜻인지, 쫓아내지 않아 고맙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좀 부담스럽다. 날 저물면 갈 곳 없는 녀석이 차 밑에 산 지 꽤 여러 날이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스치듯 지냈는데 본척만척했는데 딴에는 배려라 여겼나 보다. 그런 게 아니라면 내 앞에 쥐를 부려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마음에 없는 고양이 집사가 될 운명일까? 뿐사뿐 소리 없이 걷는 고양이가 멋스러운 동물이지만 나는 좀 무섭다. 어릴 때 냥이 발톱에 할퀴어 피를 줄줄 흘린 기억이 아직도 남았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만지지도 않는다. 제는 빤히 바라보고 눈 맞추며 올겨울은 여기서 살렴, 그리 말해야 하나. 야박하지 않게 굴어야 하나 싶다. 유난히 짧은 가을이다. 겨울의 아슴하고 냉랭한 눈길이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릿느릿 멍 때리기 좋은 계절이 온다. 따뜻한 커피에 취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럼에도 바람 따라가는 가을이 못내 서운하다.


오늘의 커피는 티오피아 예가체프 셀링가 W. 작고 동그란 원두가 예뻐서 스르륵 갈아대기 아깝다. 끌밋하지 않은 원두다. 도르륵도르륵 만지면 매끄럽고 가볍다. 자스민 향과 조청 같은 단맛이 있다. 엷고 사뿐한 향이 좋다. 분명 행동이 잰 사람인데 때때로 맹하고 딴생각에 빠져 있다. 머리가 나쁘지도 않고 엄청 똑똑하고 폼나는 직장인인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 친구 요즘 이상하다. 멀쩡해 보이지만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묵은 감정들은 속에서 곪았다. 응어리가 생겼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니다. 어떤 이유로 다시 균열이 생겼다. 뭐라도 잡아야 한다고 위로를 했지만 하나마나한 말이다. 앞에 앉아 얼굴 보기 민망해서 그냥 던지는 한심한 말이다. 아무 말 않는 게 낫다. 오늘의 커피는 흑설탕 단맛이 나다가 무덤덤한 맛이었다가 호로록하는 가뿐한 신맛에 자리를 내주는 커피다. 똑똑하고 빈틈이 없던 친구가 자꾸만 운다. 줄 게 없어서 커피 한 잔 하라고만 한다. 이가 들어도 나이를 먹어도 쩔쩔매는 일은 줄지 않는다. 잘 못 살아 그런가 보다. 가만히 엎드려 지나가길 기다리라고 말하는 커피다. 어떻게 견디지? 같이 울어주겠다고 말하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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