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알고 보니 모자란

브라질 피베리

by 만델링

안녕, 지나간 얘길 하려는 게 아니라 그 누가 나빴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그런 마음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편지를 써. 그냥 아무한테도 말할 사람이 없어서 너무 말하고 싶었던 것 말하는 거지. 오래 살았고 지금도 같이 살고 친하고 아껴주고 헌신하는 사람한테 말할 수 없는 걸 조금 친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너한테 말하는 거야. 말하고 나면 훌훌 털고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나이가 들었는데도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는 걸 처음 알았기에 엄청 슬펐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리 좌절하지 않고 그냥 좀 분해하다가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이 나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차고 넘친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 어쩌면 그간 순탄하게 살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네. 나한테 왜 그랬을까 묻기 시작하니 끝없이 힐난하는 말만 나오더라고. 자꾸 우는 일만 생기고.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당하기 힘들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숨고 싶었어. 숨을 데는 있긴 하냐고? 없더라. 그래서 그냥 울다 웃다 하다 보니 이렇게 시간은 흘렀고 괜찮은 척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아. 딱지 앉은 상처가 가라앉아 있어도 밖으로 상처를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태도를 만들었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너한테라도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네가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아지는 일은 정말 괜찮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니까.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내가 사라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고 남았다는 것에 감사할지도 몰라. 늘 들어주는 네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될 거야. 담아갈 수 있는 일이 될 것 같아.


오늘의 커피는 라질 피베리. 황금색 크레마가 보글보글 생기는 신선한 원두다. 상큼한 신맛과 고소한 쓴맛이 조화롭다. 달달한 팝콘 냄새 같은 향이 난다. 상쾌하고 소박한 맛의 커피다. 씁쓸함과 달콤함이 맞물려 있디. 떠들썩한 카페에서 시나몬롤과 같이 먹고 싶다. 한없이 느긋하게 즐기며 마시고 싶다. 어슴푸레하게 밝은 조명 아래서는 더 진한 향이 느껴질 것이다. 딱 좋은 쓴맛과 노릇노릇 고소한 맛이 좋은 커피다. 오늘의 커피는 애쓰며 하는 일이 제자리에 머물고 의지와 상관없이 손해 보는 일이 연달아 생기고 안락함과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버벅거림이 생긴 이들에게 권한다. 마음에 쌓인 불신과 불만과 불안을 사르륵 녹아내리게 하는 힘이 있다. 쓸쓸한 뒷모습을 한 이들에게 생기발랄함을 주는 커피다.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아물게 하는 힘이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쉬고 싶을 때 마시자. 짭조름한 눈물을 쓱 닦아준다. 다음을 기약하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되찾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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