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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50년, 100년

올해 2019년, 기해년으로 황금돼지의 해입니다. 년 초에 서로 황금돼지의 복을 주고받으며 시작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7월 한 여름의 중턱에 도달하였습니다. 올해의 50년 전인 1969년 7월 20일에 인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를 실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 최초로 달에 인간이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이 날 전 세계인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자국을 찍으면서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아주 위대한 도약이다.(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로써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수천 수 만년 동안 인간에게 그저 신화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달이 인간의 과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류에게 오랫동안 토끼가 걸터앉아 떡방아 찧던 달이 이제는 태양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달이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세 영웅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그리고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달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온 인류는 국적에 관계없이 인류의 승리에 대해 환호했고 기뻐하였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아폴로 11호 계획을 진두지휘한 휴스턴 우주 센터의 세 명의 과학자는 그들의 성공에 더욱 환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함박웃음 뒤에는 아주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V2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 쿠르트 데브스, 아서 루돌프 등 독임 전범 과학자 3 총사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V2생산 총책이었던 루돌프는 작업이 부진한 유대인 목을 생산라인에 매달게 하고 시체를 며칠간 라인에 매달려 있게 한 인물이고 당시 독일 친위대 소령이었던 폰 브라운은 이를 즐기듯이 바라보았던 잔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 후 미국은 이들의 로켓 생산기술이 소련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 신분을 바꿔주고 영주권자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급기야 폰 브라운은 1962년 아폴로 계획의 총책임자가 되어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면서 잔인한 나치 전범 3명도 우주인 3명과 함께 세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달은 공전 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 지구에서는 달의 앞면 밖에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달의 뒷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인류는 평생 볼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우주인 세 영웅이 달의 앞면에 있어서 인류가 그들을 칭송 하지만 그들을 달에 도착하게 한 잔학한 나치 전범 세 명이 달의 뒷면에 숨어서 환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류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1919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의 해입니다. 또한 1910년 한일합병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우리나라 국권이 상실된 지 9년이 지난 해입니다. 일본제국에 강제 합병당한 후 조선은 일본 제국의 무단 통치에 온 국민이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도 농민들에게 지주와 소작농 관계가 더욱 불리하게 되고 토지정리사업도 농민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으며 경제사정은 나날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물가 상승률은 해마다 치솟았습니다.  그러다가 1918년 일본에서 큰 흉년이 들어 쌀 파동을 겪게 되자 조선에서 쌀 공출을 늘리자 농민들의 민생고는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1919년 1월 고종 황제가 사망하게 되자 민심이 극도로 격앙되고 매국노 이완용이 일본의 사주를 받아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자 반일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1919년 2월 8일 학생들의 주도로 일본 YMCA 강당에서 2.8 독립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선언 직전 조선 유학생 송계백이 인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으로 잠입하게 되었고 그를 통하여 학생들의 거사 계획이 천도교의 수장 손병희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미 동학농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전 국민적인 독립운동을 준비 중에 있던 천도교는 개신교 불교 등 여타 종교 단체와 연대하여 역사 적인 3.1 운동을 점화하였습니다. 천도교에서는 당초 일본 정부에 조선 독립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생각했으나 민족 대표 33인 중 하나인 최린의 강력한 주장으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기로 하고 최남선이 초안을 잡고 독립선언문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족 대표 중 하나였던 최린에게도 불편한 진실이 또 숨어있습니다. 독립선언문을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인쇄하던 중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이 발견하게 되고 이에 3.1 운동 거사 계획이 사전에 들통 날 위기에 처해지자 최린이 신철을 만나 돈을 주면서 “당신은 일본 사람이냐? 조선사람이냐?”라고 호소하며 제발 며칠만 모른 척해달라 사정하자 신철이 돈 때문인지 그나마 남아있는 애국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묵인을 해줘 3.1 운동의 거사 계획이 들통이 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후에 신철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령이 떨어지자 청산가리로 자살을 하였고 정작 신철에게 당신이 조선사람이냐고 따졌던 최린은 변절하여 1935년 조선총독부 식민통치 25주년 기념 축사를 매일신보에 게재했고 1936년 “조선인 징병제 요망 운동” 발기인으로 참여해 조선 청년들에게 너희들은 일본 사람이라고 윽박지르면서 징병을 강요하는 매국노가 되었습니다. 


100년 전 최린이나 50년 전 폰 브라운이나 모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저나 인간의 달 착륙 후 50년이 지난 현재 미국과 중국의 달 정복에 대한 경쟁은 다시 치열해지고 3.1 운동이 일어나지 1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투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 후 100년 후에는 또 어찌 변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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