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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역사

기원전 99년, 지금으로부터 2100여 년 전 중국은 한무제 시절이었습니다. 한무제는 한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건설한 한나라의 7대 황제로서 기원전 141년에 16세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지만 즉위 직후 널리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유교를 채택하여 그 후 유교가 중국의 국교가 되는 초석을 다졌습니다. 또한 춘추전국 시대부터 중국의 북방에 위치한 막강한 세력인 흉노족을 공격해 흉노족을 고비사막 너머로 쫓아내는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 무제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흉노족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운 장수가 이릉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지혜가 높고 병법에 능해 겨우 5천 명의 병사만을 가지고 흉노족을 토벌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전투를 승승장구하여 적진 깊숙이 들어갔으나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적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와전되어 한무제에게는 이릉 장군이 전쟁 중 전사하였다고 보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봄이 되자 이릉 장군이 전사한 것이 아니라 포로가 되어 적군에 잡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적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한무제는 격노를 하였고 즉각 중신들을 불러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한무제의 고집스러운 성격과 평소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품성을 잘 아는 중신들은 하나같이 이릉 장군의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폐하, 이릉 장군이 애초부터 홀로 부대를 벗어난 것부터가 무책임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폐하 그는 전에부터도 고집이 세고 잘난 척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폐하, 그런 자와 같이 종사를 도모했다는 것이 창피합니다. 그자의 삼족을 멸하여 후세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얼마 전까지 만해도 그를 칭찬했던 중신 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때 말석의 한 젊은 신하가 불쑥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습니다.

“폐하, 이릉 장군은 이제 전쟁에 나간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여러 중신들은 그가 출정할 때 배웅을 하며 장군의 지략을 칭송하고 또 그가 전도유망한 장수라고 칭찬들 하였습니다. 그런데 반년도 안되어 정확한 사정도 모른 채 역적으로 모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그의 충성심과 품성을 보아서는 분명 그가 적진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 진실을 파악할 때 까지는 그를 욕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 간언을 들은 한무제는 크게 화를 내며 그에게 남자에게는 최대의 치욕인 궁형을 내렸습니다. 이 궁형은 남성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로써 당시 사형보다 더 큰 형벌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형벌을 받은 그에게 사람들은 수치스럽게 사는 것보다 남자답게 죽은 것이 어떠냐고 말하기도 하였고 그가 어딜 가나 수치스럽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굴욕을 묵묵히 참고 삶을 이어 갔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중국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입니다. 


사마천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중에 임안이라는 장군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독약을 내밀며 “사마천, 더 이상 수치스럽게 살지 말고 이 약을 먹고 자결하시오”라고 말하자 사마천은 “싫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내가 죽는 것이 뭐 그리 무섭소? 깨끗하게 죽으시오” “싫소, 끝까지 살겠소”라고 답하자 임안 장군이 “황제한테 죽을 줄 알면서도 직언을 하던 그대가 왜 그리 목숨에 연연 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10년, 15년이 되면 그때 말하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임안 장군은 화를 내며 “아니 그리 오래 살겠단 말인가? 내가 정녕 사람을 잘 못 보았군”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후 몇 년 후 임안 장군은 누명을 쓰고 역적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형당하기 얼마 전에 사마천이 몰래 감옥으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를 본 임안 장군이 놀라 물었습니다. “아니, 사마천 당신이 이 감옥까지 웬일 이시오?”라고 묻자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었소. 그리고 몇 년 전에 당신이 물어본 내가 왜 자결하지 않고 사는지에 대한 답을 하려고 왔소” 말하자 임안은 정색을 하며 “난 사내답게 죽겠소. 당신처럼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지 않겠소.”라고 말하자  “보시오 임안 장군! 내가 왜 사는지 아시오? 나는 역사를 쓰기 위해 살고 있소. 이 나라의 간신배들이 어떻게 이 나라를 망치고, 황제는 또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살았는지 나는 분명 살아서 모든 것을 역사에 남길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임안 장군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마천은 훗날 그의 말 대로 역사서를 완성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자 영원한 고전이라 평가되는 사기(史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에 쓰인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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