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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사랑 방정식

수학에서 변수를 포함하는 등식에서 변수의 값에 상관없이 등호가 성립하는 등식을 항등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ax + bx = (a+b) x는 항등식입니다. 변수에 어떠한 수를 넣어도 항상 등호가 성립합니다. 이에 반해 식에 포함된 변수의 값에 따라 참 또는 거짓이 되는 식을 방정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3x+1 = 16에서 x는 5일 경우에만 참이고 그 외의 경우에는 거짓이 됩니다. 여기에서 x는 답을 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에 미지수라고 하고 이런 미지수가 하나인 경우는 일차 방정식, 두 개인 경우에는 이차 방정식, 셋인 경우에는 삼차방정식이라 하며 당연히 고차 방정식일수록 훨씬 더 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수학 방정식이라고 해도 반드시 그 답이 있고 오랜 시간을 연구하면 풀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남녀의 사랑 방정식은 1차원이나 2차원 같이 쉬운 방정식도 있는 반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무한차원의 고차원 방정식도 많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 방정식이 영원히 풀리지 않으면 안타깝게도 그 사랑은 깨지게 됩니다. 다행히 사랑이 깨지기 전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정식이 풀리면 그나마 사랑은 이어지게 됩니다. 나도 아내와 결혼한 지 32년이 다 되었는데도, 방정식의 미지수 x나 y의 값을 알면서도 그걸 맞춰 주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네요. 지난 주말에 아내와 아주 사소한 실랑이를 겪었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답을 알면서도 왜 매번 나는 그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답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저 맞장구 쳐주거나 무조건 아내 편을 들어주면 방정식이 풀리는 것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또 나는 그 쉬운 것을 못해서 아내와의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침묵 속에서(그나마 오래 같이 살아 전면전으로 확산되는 트리거 레벨은 서로 피하는 내공은 쌓였습니다) 웹서핑을 하다가 사랑의 방정식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어느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육십이 넘은 노 부부가 성격차이로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을 한 그날 두부부는 이혼 처리를 담당했던 변호사와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곳은 법원 근처의 치킨집이었습니다. 주문한 치킨이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이제 마지막이다 싶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 말없이 할머니에게 권했습니다. 이 모습은 본 변호사는 어쩌면 이 두 노부부가 다시 화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할머니가 매우 기분 상한 얼굴로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지난 삼십 년간 당신은 항상 그래 왔어요. 당신은 늘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했죠. 그런데 이혼하는 날까지도 그러네요. 나는 닭날개를 싫어한단 말이에요. 나는 닭다리를 좋아한다고요. 당신은 평생 내가 어느 부위를 좋아하는지 한 번이라도 물어봤나요?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할머니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매우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닭날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야 그동안 나는 내가 가장 먹고 싶은 부위를 지난 삼십 년간 당신에게 먼저 양보한 것인데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이혼하는 날까지… 

화가 난 노 부부는 어쩔 줄 모르는 변호사를 두고 서로 씩씩대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자꾸 할머니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로 아내 말 대로 지난 삼십 년간 아내에게 어느 부위를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어도 매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아내에게 그저 섭섭한 생각만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자신이 잘 못한 것임을 깨닫고 또 아직도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기에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걸어도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계속 전화하자 핸드폰을 아예 꺼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뜬 할머니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러고 보니 나도 남편이 닭날개를 좋아하는지 지난 삼십 년 동안 전혀 몰랐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를 매번 먼저 떼어서 나에게 권했는데 뽀로통한 얼굴로만 대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남편이 나를 그렇게까지 마음 써 주었는지는 몰랐네. 비록 헤어졌지만 늦게 라도 사과라도 해야겠다고 생각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어제 전화를 받지 않아 할아버지도 화가 나 전화를 받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불길한 마음에 전화받아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습니다. 정신없이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간 할머니는 핸드폰을 꼭 잡은 채 죽어 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에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는 문자메시지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모두 나의 잘못이야. 돌이켜 보니 정말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었네 지난 삼십 년간.. 그래도 당신 정말 사랑해…….”


차마 보내지 못한 이 메시지가 인터스텔라급 고차원 사랑 방정식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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