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건배사

건배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술좌석에서 서로 잔을 들어 축하하거나 건강 또는 행운을 비는 것이고(Toast) 또 하나는 술잔의 술을 다 마셔 비우는 것을(Bottom-up) 말합니다. 

건배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 카르타고군이 포도주를 아주 좋아하는 고대 로마군의 특성을 이용하여 포도주에 마취제를 넣어 로마군에게 먹여 불리하던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습니다. 그 후 서양인들은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해 주인과 손님이 동시에 술을 따르고 같이 마심으로써 독주가 아님을 확인하였고 술잔을 서로 부딪혀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했다고 하고 이것이 오늘날의 건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건배를 토스트(Toast:구운빵)라고 하는데 찰스 2세 때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연못에 서있었는데 그녀의 숭배자 중 하나가 연못의 물을 떠서 그녀를 위해 건배하자 , 당시에는 술에 토스트를 띄워서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거기에 같이 있던 주정뱅이가 자신은 술(연못의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연못에 뛰어들어 토스트(여인)를 잡겠다고 하자 그 후로 명성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토스트라고 부르고 동시에 여성의 건강을 위해 건배하는 것도 토스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동양권에서는 술잔을 깨끗이 비워야 하는 풍습으로 한국에서는 마를 건(乾) 잔 배(杯)를 써서 건배, 중국에서는 이를 간빠이 일본에서는 칸베이라고 불렀습니다. 

스페인의 건배는 건강을 뜻하는 살룻(Salud)으로 술잔을 세 번 부딪치며 살룻을 외칩니다. 미국이나 남미의 가이아나에서는 안녕 또는 격려를 뜻하는 치어스(Cheers), 프랑스에서는 스페인과 비슷하게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를 뜻하는 아 보트르 쌍테 (A votre sante)라고 하거나 이를 짧게 쌍테라고 외칩니다. 독일의 건배는 프로짓(Prosit)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가장 일반적인 건배사인 “위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배를 할 때는 건배사가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데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건배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일 것입니다. 매년 송년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건배사를 다 모으면 수백수천 가지는 될 것입니다. 40년 전 내가 대학생 때는 “조통세평개나발”이라는 건배사가 유행했었는데 이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 “조국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와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길고도 심오한 의미가 담긴 건배사였습니다. 이런 약자형 건배사는 오랜 세월 동안 수 만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사우나는 “사랑과 우정을 나누자!”를 말하고 오징어는 “오랫동안 징그럽게 어울리자!”를 뜻합니다. 요즘 거시기라는 건배사가 재미있는데 이는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 마시자!”라는 뜻입니다. 최신형으로는 남존여비 여필종부가 있는데 이는 남자의 존재의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자는 필히 종부세를 내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한 박보검이라는 건배사는 박수를 보냅니다. 검(겁)나게 수고한 당신에게라는 뜻입니다. 정말 누가 다 만들었는지 재미있고도 센스 있는 건배사들입니다. 이런 약자형 건배사 말고도 선창 후창형 건배사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술잔은” 하고 선창 하면 “비우고”라고 후창 하고 다시 “마음은” 선창 하면 “채우고”라고 후창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으로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희망은” “곱하고” “사랑은” “나누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골프 후 회식자리에서는 “드라이버는” “멀리” “퍼터는” “정확하게” “아이언은” “부드럽게”라고 외칩니다. 라임 형 건배사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통통통은 “ 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을 뜻합니다. 걸걸걸은 “ 더 사랑할걸 더 참을걸 더 즐길걸”이라고 합니다.     33년 직장생활 동안 가장 세련되고 운치 있는 건배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33년 직장 생활 중 30년을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 나는 많은 외국인 보스와 일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글로벌 보험사에서 국제 사업을 담당한 회장이 있었는데 그가 정년 퇴임을 하면서 재임 중 가장 애착을 가졌던 몇몇 나라를 마지막으로 순방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그 후 한국이 그룹 내 Big 5 지사로 성공하자 한국을 가장 사랑한 그룹 임원이었습니다. 그와의 마지막 만찬은 한국 CEO와 CFO 그리고 당시 COO였던 나와 함께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여성 CFO가 빈티지와 생산지가 각각 다른 몇 병의 와인을 가지고 와 건배를 제안하면서 배경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퇴임을 하는 회장의 재직 기간 중 기념이 되는 해의 빈티지와 당시 해당 국가의 생산지 와인을 가지고 와서 그 나라의 건배사로 건배를 제의한 것입니다. 첫 번째 건배는 그가 미국 본사의 국제 사업 담당 회장으로 취임한 1998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 와인을 가지고 미국의 건배사인 “치어스”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2001년 그의 스페인 지사 합병을 기념하기 위해 2001년 스페인 산 와인으로 “살룻”을 외쳤고 2009년 그의 프랑스 지사 인수를 기념하면서 2009년 보르도 산 와인으로 “쌍테”로 건배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2012년 레스토랑 하우스 와인으로 한국의 “위하여”를 외쳤습니다. 은퇴를 앞둔 그 노회장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고였고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고 센스 있는 건배사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자성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