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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사자성어

보통 매년 연초가 되면 기업의 회장이나 학계의 유명한 학자 그리고 정계의 정치인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여 그 해 비전으로 삼거나 그 당시 시대상의 사회적 화두를 던지곤 했습니다. 

아니면 본인의 좌우명으로 특정 사자성어를 지정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은 대도무문(大道無門)으로 이는 큰길을 가는 데는 문이 없다는 뜻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의 좌우명을 자주 피력함으로써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오직 정도를 걷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9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고 합니다. 이는 논어의 태백편에 실린 고사성어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으로 현 정권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 하늘 천(天) 자가 들어간 고사성어에서 “ㄴ” 받침 하나를 빼서 모든 결론을 아내로 귀결시킨 새로운 성어를 만들어 내어 많은 누리꾼들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하였습니다. 특히 아내를 무서워하거나 존경(?)하는 많은 남편 들로부터 엄청난 공감을 받았습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즉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성어인데 천에서 “ㄴ” 받침을 빼서 인명재처 (人命在妻)로 바꾸어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달려있다고 재 정의하였습니다. 지성감천 (至誠感天), 정성을 다하면 하늘을 감동시킨다라는 사자성어는 “지성감처(至誠感妻), 정성을 다하면 아내를 감동시킨다”로 바뀌고 천하태평(天下泰平)이라는 고사성어는 처하태평(妻下泰平)으로 바뀌어 하늘 아래 태평성대에서 아내 밑에 있을 때 모든 것이 편하다고 변했습니다.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 (眞人事待天命)은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아내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처명 (眞人事待妻命)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모든 일은 바른 것으로 귀결된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도 모든 일은 아내로 귀결된다는 사필귀처(事必歸妻)로 바뀌어 말 그대로 기-승-전-아내로 결론지어졌습니다. 근데 이 새로운 정의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한자 형태의 사자성어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국적 불명의

사자성어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는 새로운 사자성어입니다.

“빼박캔트”는 빼도 박도 못한다(Can’t)라는 신조어이고 “앙기모띠”는 기분 좋을 때 쓰는 감탄

사로 일본어로 기분이 좋다는 뜻의 기모치이이를 기모띠로 변형하여 만든 신조어입니다. 이외에

도 복세편살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준말이고 번달번줌은 휴대폰 번호 달라고 하면 번호 줌?

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형태의 신조어도 이미 2-3년 전의 버전이고 요즘에는 아예 초성만으

로 SNS에서 소통하고 있습니다. “ㅇㄱㄹㅇ”은 “이거 진짜”를 뜻하는 “이거레알”의 준말이고 “ㅇㅈ”

은 인정 즉 OK를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참으로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눈물지을 만한 일이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이러한 신조어를 알지 못하면 대화 자체에 낄 수가 없다 하니 기성세대들은 신조어를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는 곤란한 요즘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가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나름 사자성어에 일가견 있다고 자부하던 나도 도대체 무슨 뜻의 사자성어인지 알 수가 없어 인터넷에서 조회를 하고 나서 아주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 새로운 사자성어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뜻하는 신조어였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의 내로남불은 유치함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면 정당한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가 되고 내가 하면 실수고 남이 하면 위장전입이고 내 아들은 정당한 병역 면제이고 남의 아들은 병역 특혜이고 내가 가면 공식 해외 출장이고 남이 가면 출장을 빙자한 관광이 되고 내가 하면 오락이 되고 남이 하면 도박이 되는 정치인을 우리는 매일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일류 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긴 미국에서도 내로남불과 비슷한 “Boss is always right”라는 풍자가 있습니다. 

“내가 오래 걸려 일을 처리하면 나는 느린 것이고 보스가 늦게 하면 그는 사려가 깊은 것이다.

내가 지시받지 않고 일을 하면 나는 건방진 것이고 보스가 그렇게 하면 그는 능동적인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나는 게으른 것이고 보스가 하지 않으면 보스는 바쁜 것이다. 

내가 보스를 도와주면 나는 아첨하는 것이고 보스가 그의 보스를 도와주면 그는 협업하는 것이다.

내가 성과를 내면 보스는 절대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실수를 하면 보스는 절대 잊지 않는다.”

보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로남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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