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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Goodbye yellow brick road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10대 시절을 70년대에 겪은 나는 당연히 그 시절의 음악과 뮤지션을 가장 좋아합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음악보다는 서구의 팝 음악이 젊은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팝그룹은 Beatles, Beegees 그리고 Eagles입니다. 세 그룹은 각각 그들 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대중들에게 선 보였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팝 듀오는 Simon & Garfunkle입니다. 그들이 당시 만들어 냈던 환상적인 화음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싱글 팝 싱어는 Elton John입니다. 

그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Goodbye yellow brick road”라는 노래를 아주 좋아합니다. 굳이 영어 제목을 번역을 하자면 “안녕 노란 벽돌 길” 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엘튼 존이 1973년 발표한 곡으로 지금 까지도 대중 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란 벽돌 길은 유명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영화에서 도로시와 그녀의 친구들은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에메랄드 도시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노란 벽돌 길은 이 에메랄드 도시로 안내하는 길로 일컬어지며 환상으로 가는 길 또는 삶의 해답을 얻는 길이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환상과 성공을 꿈꾸는  길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So, goodbye yellow brick road where the dogs of society howl. You can’t plant me in your penthouse. 

Back to the howling old owl in the woods. Hunting the horny back toad. 

Oh, I’ve finally decided my future lies beyond the yellow brick road.

속세에 찌든 개들이 짖어 대는 노란 벽돌길이여 이젠 안녕. 당신은 나를 당신의 펜트하우스에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늙은 부엉이가 울고 등이 울퉁불퉁한 두꺼비를 잡을 수 있는 숲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나의 미래가 노란 벽돌 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엘튼 존은 이 노래를 통해서 환상과 성공을 좇는 노란 벽돌 길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숲으로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노란 벽돌 길이든 부엉이가 우는 숲이든 어디에 정착할지에 대한 정답은 따로 없을 것입니다. 노란 벽돌 길에서 현실과 부딪히며 치열하게 성공을 추구하며 살 수도 있고 숲으로 돌아가서 무료하지만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본인의 몫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늙은 부엉이가 우는 숲보다는 노란 벽돌 길에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여 숲으로 돌아가게 될 때도 가능하면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길 원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노란 벽돌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옛 말에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떠한 꽃도 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가 어떤 때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움켜쥐려 한다면 항상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꿈꾸며 영원불멸의 제국을 완성하는 당치 않은 꿈을 꾸었다 오히려 50세의 젊은 나이에 객사하였습니다. 그가 만일 영원히 노란 벽돌 길에 있으려 하지 않고 적당한 때 늙은 부엉이가 우는 숲으로 돌아 가려했다면 그 화려한 아방궁을 채 즐겨보지도 못한 채 50세의 젊은 나이에 객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와 같은 범부는 이를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마치 죽을 줄 알면서도 불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 같이 말입니다.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릅니다.

“버리고 비우는 일이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로운 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치고 있다.”우리는 언제 버리고 비우며 Goodbye yellow brick road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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