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의 또 다른 말
"쟤 좀 치워줘"
그렇게 난 잘렸다.
오랜 취업 준비 끝에 드디어 그럴싸한 회사에 취직했다.
출근 첫날 설렘을 안고 책상에 이것저것 사무용품을
펼쳐놓고 사장님을 기다렸다.
그렇다. 난 비서다.
"사장님 들어가십니다."
수행비서님의 전화를 끊자마자 옷 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입사한 김은영이라고 합니다."
"아, 네."
쌩~
정말 잠깐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의 표정을 읽었다.
"어쩌라고"
(낯선 여자에게서 까칠한 여사장의 향기를 느꼈다.)
"은영 씨 반가워요! 전 해외사업팀 이영아입니다. "
"저는 마케팅팀 박대리라고해요. 반가워요."
.
.
.
까칠한 여자 사장 빼곤 모두가 날 반겨주고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자기, 내 옷 차에 실어놔. 빨리. 빨리."
갑자기 전화가 와선 옷을 차에 실어 놓으란다.
사장실 소파에 걸려있는 옷을 들고 뛰어내려가
수행비서님께 전달하고 올라왔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야 이 미친 X아, 누가 이 옷 실어 놓으래?"
"네?"
"코트 있잖아. 코트!!!!"
"죄송합니다. 사장님 실에 있던 옷을 급히 챙겨다 드렸는데 다시 챙겨서 내려갈까요?"
"아 답답하네.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아 더럽게 일 못하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게 갑의 횡포이고 을의 현실인가.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인격모독이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결심했다.
때려치우고 만다!
.
.
.
.
.
(다음 날)
-인사발령-
권고사직 : 비서실 김은영
인사발령 공고를 보고 어이없어하고 있는 날 본 인사팀 김 과장이 다가와 말했다.
"은영 씨 미안해요. 어제 은영 씨 퇴근 전에 여사장이 엄청 화가 나선 저한테 다가와 그러더라고요.
("비서 쟤 있지. 내일 쟤 좀 치워줘")라고.. "
순간 너무 당황을 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져, 그럼 일을 못하죠?
그걸 어이가 없어, 해야 할 일을 못한다는 뜻으로 어이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그래 어이가 없네?"
그 순간 난 유아인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난 사장실 문 앞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당당히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때려치우려던 참인데 고맙습니다^^ 실업급여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