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비트코인, 그리고 달러의 지정학 - 오태민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간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재산을 다 처분하여 산과 강을 넘어 안전한 나라로 피난을 떠날 예정이다.
국경을 넘는 동안 다른 나라의 보안검색대나 국경수비대 혹은 그 지역의 난민들을 뚫고 나아갈 때,
당신은 처분한 재산을 어떤 형태로 들고 가겠는가?
1) 종이 달러, 2) 금, 3) 비트코인
왜 그 선택을 하였는가?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며, 세기말 비트코인이 떠오르는 이유를 지정학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해하기 쉽게 3줄 요약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2) 이러한 무질서의 시대, 즉 지정학의 시대에서 개인이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떤 세력,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보편적인 화폐이다.
3)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조작하거나 고칠 수 없는 ’ 중립성‘을 띤 규칙이며,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보편적인’ ’ 가치 전환 수단‘으로서,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무질서한 지정학의 시대에서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가치물이 될 것이다.
“한 국가의 지리를 안다는 것은 그 국가의 대외 정책을 아는 것과 같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지정학(Geopolitics)이란?
인간의 분열에 지리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지리적 조건과 경제가 국가 간의 정치와 상호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탐구한다.
지정학이야말로 ‘바꿀 수 없는 한 나라의 운명‘이다.
지정학적 시대란?
지리 때문에 세계의 통합이 깨지는 시대를 의미하며, 대중이 너무 놀랄까 봐 지식인들이 엄선한 어휘이다.
지정학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은 그동안 익숙했던 평화의 시간과 작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세대가 익숙해진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
당연한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국제 질서는 미국이 만들었다.
미국이 만들어낸 세계질서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1) 국민국가의 주권을 중시한다.
2) 공급사슬망이 지구적 규모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국민국가의 주권이 존중받지 못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독립된 주권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수립한 세계 질서 하에서 국민국가 시대라고 불릴만한 질서가 자리 잡았다.
가난하거나 잿더미인 세계에서 미국은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발전 경로를 만들었다.
UN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국민국가들의 협력, 브레턴우즈 체제, 자유무역의 원칙, 항행의 자유가 세계체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국제질서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방법으로 세계를 통치하는 발상은 이전의 제국주의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아무 비용이 없을까?
당연히 존재하는 질서일까?
미국이 주도한 세계체제는 어떻게 70년이나 작동할 수 있었을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시대에 개별 국가들이 하나의 규칙 아래 행위한다는 인식을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규칙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달러 시스템이다.
달러 시스템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국제금융과 무역 질서를 통칭한다.
미국이 누려온 특권은 달러체제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은 미 연준의 빚이기도 한 달러를 무한히 발행해 외국으로부터 자원과 용역을 값싸게 끌어올 수 있다.
미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달러가 계속 해외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이 무역적자를 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이 무역적자를 계속 쌓기만 하면 미국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달러가 신뢰를 잃어버려 결국 달러 대신 다른 대체수단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달러의 수요는 줄어든다.
이를 트리핀의 딜레마라고 한다.
이를 이해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이 바뀌며, 포스트 1945 체제의 특징에 대해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불완전한 체제가 어떻게 70년이나 작동할 수 있었을까?”
포스트 1945 체제는 국제 공조체제이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 무역흑자를 내는 나라들의 협력이 지대했다.
미국은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개방해 주었고, 서독과 일본은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냈으며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가져왔다.
서독과 일본은 경제적 번영으로 누적한 힘으로 미국의 군사력에 대항하지 않고 미국의 국방력에 의존했다.
이는 전체 시스템이 안정되는 데는 이로운 선순환이었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함께 세계경찰로서 군사비를 지탱하느라 재정적자도 늘린다.
이에 미국 달러는 신뢰를 잃고 미국은 무역적자를 누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의 물가는 오르고 군사비 부담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는다.
이는 트리핀 딜레마가 작동한다는 전제에서 미국과 세계가 해법을 찾지 못할 때의 시나리오다.
그런데 아직 미국은 쇠락하지 않았으며, 전 세계는 미국의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를 원하고 있을까?
미국 채권과 이자율이 그 해답이다.
대부분의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여 마련한 돈으로 지출을 한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국가 채권의 악순환에 빠지기 어렵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1) 채무를 외화로 갚을 필요가 없이 미 연준이 발행하는 달러로 갚으면 되고, 2) 지정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채권은 수요가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채권의 가격이 높다는 것은 미국이 이자율을 높이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이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쌓아도 국가 신뢰도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기에 고금리에 따라오는 경기위축을 강요받을 필요가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질서 하에 번영한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국채를 꾸준히 사주었다.
이는 미국채의 가격을 올려주고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이자율을 높이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미국채를 구입한다는 것의 의미는 세계체제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미국의 비용과 부담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이다.
중국도 미국의 도움으로 개방정책에 성공하고 기적을 일군 국가이다.
중국도 처음에는 미국에 협조적이었다. 무엇보다 미국 시장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흑자를 쌓으며 서독과 일본처럼 미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미국으로 달러를 환원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전략이 바뀌었다.
중국은 미국채를 늘리지 않기로 했다. 미국이 달러 가치를 내리면 막대한 외화자산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서독, 일본과 달리 군사적 야심을 추구하며, 미국채를 구입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재정부채 부담을 늘리고 있다.
미국이 제공한 안보질서에서 힘을 키운 상대가 일본이나 독일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부담은 배로 늘어났다.
또한 달러 질서의 변화는 미국 내부에서도 휘몰아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 그리고 정부가 지출하는 미국채 이자비용은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하였다.
미국은 스스로 주도한 세계체제 때문에 경제가 위기로 빠지게 되었다.
세계평화에 의한 번영은 막상 미국의 평균적인 국민들을 소외시켰다.
미국은 시장을 개방한 지 얼마 안 되어 일본, 독일, 중국, 한국, 대만에게 제조업 우위를 내주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들은 사라졌고, 이는 미국 남성들에게 충격을 가하였다.
미국 경제가 계속 성장했음에도 중산층 이하의 실질소득이 수십 년간 답보상태에 머문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민의가 세계체제를 지탱하는 쪽으로 수렴되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고상한 가치를 강조하는 이상주의적 수사를 내세우는 여타의 미국 대통령들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우선주의를 본인의 정치 간판으로 내걸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세계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무렵에는 미국 시민들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에 패전한 독일과 일본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이념이 다른 중국마저 미국의 도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할수록, 미국민만 발전으로부터 정체된 현상이 괴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트럼프 후보가 자주 했던 말은 바로 “내가 당신들의 목소리다”였다.
”바다는 연결하지만 육지는 연결을 끊는다 “
산맥과 사막과 강과 숲은 모두 연결을 끊는 장벽들이다.
운송에서 육지가 바다보다 유리한 것은 보병과 말에 탄 군인이 이동할 때뿐이고 상품과 원료 그리고 정보를 운반하기에는 바다에 비해 너무나 불리하다.
대양은 속성상 하나로 연결된 평평한 대륙과도 같아서 한 명의 주인이 모두 가져야만 평화로운 곳이다.
지금의 국제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은 해양세력이다.
제국주의 시절 거대한 바다, 즉 대양은 누구의 것도 아닌 무질서한 곳이었다.
해양을 누비는 상인들, 해적들, 군인들이 수백 년간 벌인 쟁투 끝에 ‘지구 바다‘는 하나의 나라, 미국에 속하게 되어 항행의 자유가 시작되었다.
지정학의 시대가 도래하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던 고리들이 끊어질 것이다.
전 세계의 자원과 상품이 오가던 ‘지구 바다’가 더 이상 ‘이음새 없는’ 플랫폼으로 작동하지 않으므로 힘과 비용을 쏟아부어야만 상품을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중국의 남중국해 점거와 미국의 항행의 자유작전은 지정학적 시대의 서막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많이 수입하는 국가인데 이 말은 서쪽과의 교통에 사활이 걸려 있다는 말과 같다.
중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패권을 발휘하려면 일단 자신의 서쪽 항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에 맞서 항로를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이 타이완을 점령했을 때 미국의 선택지가 바로 중국의 서쪽 항로를 봉쇄하는 것인데, 그 상황에서 중국이 견딜 수 있는 기간은 100일 정도라고 한다.
이것이 에너지와 식량 모두 자급하지 못하는 중국의 현실이다.
화폐란 그 자체로 ‘보편성‘을 갖는다.
사람들은 자산을 화폐로 바꾸는 방식을 사용해 지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 1945 체제에서 국가들은 화폐를 통제하며 그 보편성을 제한해 왔다.
세계체제가 위기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보편적 화폐를 갈구할 것이다.
비트코인은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낸 중립적인 규칙이다.
중립적인 규칙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절대권력자가 고칠 수 없게 기록되어야 한다.
즉, 고칠 수 없는 기록은 오랫동안 인류가 꿈꿔왔던 것이다.
비트코인은 그 진실성을 블록체인의 분산성 & 시간개념으로 이루어냈다.
*분산성: 비트코인의 거래기록은 수많은 노드에 동시에 입력돼 저장되며, 동시에 모든 노드의 기록을 바꾸지 않는 한 바꿀 수 없다.
*시간개념: 비트코인 블록은 시간순으로 생성되어 이어진다. 이 순서가 뒤바뀔 수 없다는 사실에서 시간개념이 나온다.
즉, 비트코인은 미국이나 중국 등 정부가 함부로 금지하기 어려울 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며, 법정에 불러 세울 타깃도 없다.
각국 정부에 의해 비트코인이 금지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회의론자들은 지정학적으로 이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국제질서가 계속 작동한다고 믿는 셈이다.
비트코인이 지정학적인 자산이라는 명제는 “미국이 결심하면 비트코인이 끝나지 않느냐”라는 회의론자의 의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미국의 후퇴로 인해 붕괴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생태계는 국가의 자본통제를 무력화하면서 가치물을 지구 어디에나 이동시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 전환 수단’이다.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국가의 자본통제에 대해 개인들이 비트코인과 같은 대비수단을 가진다는 사실은 오늘날 미중 대립 시대에 적지 않은 지정학적 의미를 갖는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전쟁이 나서 국경을 뚫고 피난을 갈 때, 어떤 형태로 재산을 들고 가야 할까?
1) 종이 달러, 2) 금, 3) 비트코인
이 세 가지 가치물 중 무엇이 지정학의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가치물인지 선택하라는 시험문제에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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