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 나 자신도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타인이다.
강아지는 잘 챙기면서
왜 자기 자신은 잘 돌보지 않을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아프다고 해 보자.
당연히 강아지를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갈 것이고,
강아지에게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아플 때는 약조차 제대로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사람 중에는 자신보다 동물을 더 끔찍이 챙기는 이가 많은 듯싶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자신보다 애완동물을 더 아끼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나는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혼돈과 질서는 삶의 경험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이런 이원적 구조를 이미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라이언 킹〉, 〈인어 공주〉, 〈미녀와 야수〉 등과 같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와 미지의 세계,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가 끊임없이 중첩되며 만들어 내는 이상하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우리는 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질서의 세계는 혼돈으로 둘러싸여 있다.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은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둘은 삶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다.
질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협적인 상황이 수시로 닥치기 때문에, 안전과 평안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만 한다.
따라서 한 발은 이미 잘 아는,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땅을 디디고, 다른 발은 잘 모르는, 탐험을 통해 알아 가야 할 땅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삶의 위협 요소들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동시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깨어 있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선과 악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동물들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이유는 악해서가 아니라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학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자의식의 발달만큼이나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첫 번째 지식이었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두 번째 굴레였다.
이로써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늘 창조주와 함께 있었지만 눈이 열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들의 선함은 타고난 것일 뿐 자유 의지로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었다.
쉽게 얻은 선함이 노력해서 얻은 선함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존재 가치에 의심을 품고 괴로워하게 된 것은 자의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려는 거부감이 주된 원인이다.
성경은 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치밀하게 짜인 이야기책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역사의 태동, 국가의 탄생, 어긋난 상황을 바로잡으려 한 위대한 도덕적 인물들과 메시아의 출현 등은 모두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인간의 시도였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로 세운다는 게 무슨 뜻일까?
놀랍게도 이 의문의 대답은 <창세기> 1장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니 혼돈으로부터 좋은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의식적으로, 자유 선택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구 문화에서는 고결한 자기희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남에게 대접하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례가 아니라
유한성과 배신, 폭압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모범적인 사례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다시 말하면, 자신과 남을 의식하게 된 비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최고선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부당한 착취를 기꺼이 감내하라는 뜻이 아니다.
폭압과 착취를 용인할 수는 없다.
불의한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게 미덕은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에 담긴 의미는 서툴고 부족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나약한 당신을 포용하고 사랑하라는 뜻이다.
나도 영혼이 캄캄한 구렁텅이에 빠져 인생의 암흑기를 힘겹게 보낸 시절이 있다.
그 시기를 이겨 낼 수 있던 것은 서로 친구가 되고 배우자와 자녀 및 부모가 사랑하며 맡은 일들을 성실하게 해내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에 깊이 감동한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삶의 무게와 제약에 억눌려 힘겨워하면서도 올바르게 행동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게 놀랍기만 하다.
인간이면 누구나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힘겨워한다.
모두 위로받을 만하다.
도덕적으로 나약하기 그지없고 국가의 폭정과 대자연의 약탈을 견뎌야 하는 인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어떤 동물도 경험해 본 적 없고 이겨 낼 수도 없는 실존적 상황이다.
자신과 인간 전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기 전에 전통과 국가의 가치,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성취한 것들, 위대한 인물들의 엄청난 업적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당신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한다는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또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아이가 원할 때마다 사탕을 주면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행복’은 결코 ‘좋은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또 항상 깨어 있는 존재로서 자신과 남을 배려하고, 정정당당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목표와 방향의 힘은 얕볼 수 없다.
목표를 정하고 그곳으로 향한 길을 걸어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지옥으로 추락하는 세상을 천국으로 옮겨 놓는 일에 당신 역할도 있다.
힘겨운 삶을 사는 당신이 꼭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찾아진다.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는 것.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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