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서문
서구는 이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과학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국가적인 포부와 관심이 사라지면서 의료, 우주 탐사, 군사 소프트웨어와 같은 분야에서 정부의 혁신이 쇠퇴했고, 그 결과 혁신 격차가 생겨났다. 정부는 원자폭탄과 인터넷을 탄생시켰던 대규모 혁신의 추구에서 물러섰고, 다음 세대의 획기적 기술 개발이라는 과제를 민간에 넘겨버렸다.
한편, 실리콘밸리는 점점 내향적으로 변해 미국의 안보와 복지라는 더 큰 프로젝트가 아니라 좁은 영역의 소비자 제품 개발에만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링 엘리트들은 국가를 방어하고, 이 나라가 무엇이며, 우리의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는가와 같은 국가적 과제를 명확히 세워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적대 세력에게 간신히 유지해온 취약한 지정학적 우위를 방어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사상 처음으로 인류가 그동안 독점해온 창의적 우위가 실질적으로 위협받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폐기해도 무방하다고 여겼던 국가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에 관한 질문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안팎에서 국가적 기획의 진전과 재구성을 위해 실리콘밸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는 게 우리의 큰 바람이다.
20세기에 보여준 미국의 기술적 우위는 곧 국가의 신뢰도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다. 국가를 돕기 위해 나선 공학과 과학 공동체의 의지는 민간 부문의 정당성뿐 아니라 서구의 정치 제도가 오랫동안 존속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오늘날 실리콘밸리는 과거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던 전통에서 상당히 떨어져 온라인 광고나 소셜 미디어 플랫폼 등 주로 소비자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부를 쌓는 데는 주저함이 없지만,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은 피하려고 한다.
현재의 미국은 여러 세대 동안 세계 강대국 간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젊은 엔지니어들이 디지털 무기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얼마나 꺼리는지 직접 보아왔다. 이들 중 일부는 지금 자신들이 누리는
사회 질서와 안전하고 안락한 삶을 미국이라는 프로젝트가 정의로워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로 본다. 국가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치밀하고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안전과 편안함이 싸워서 쟁취한 게 아니라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기본 조건처럼 여긴다.
하지만 지정학적 권력 투쟁의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려는 태도는 위험을 안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소유한 막대한 부와 거대한 사업 제국, 정체성 자체는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국가 덕분에 존재한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동맹국들이 지난 세기에 누렸던 주도적 지위를 이번 세기에도 유지하려면 국가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서로 분리되어선 안 된다. 기술 산업은 그들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국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가와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술이 실현해야 할 보다 근본적이고 변혁적인 비전을 향해 나아가려면 다시금 공익을 중요시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우리는 기술산업과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던 전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 조합만이 우리의 복지를 증진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프로젝트 자체의 정당성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세대 공격 능력을 구축할 능력과 조건을 가장 잘 갖춘 세대가 국가 방위나 공동체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가장 쉽게 물러서려 하고 있다.
이런 미국 정신의 공동화가 오늘날 우리를 무방비하고 취약한 상태로 내몬 결정적인 이유다.
대학 행정가나 정치인은 물론 실리콘밸리의 경영진까지 광범위한 지도자들이 진정성 있는 신념을 조금이라도 내보이면 가차 없이 응징받는 분위기 속에서 수년을 보내왔다. 현대 공인들에게 쏟아지는 끊임없는 감시는 의도와 달리 정치나 인접한 분야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의 수를 크게 낮추는 역효과를 낳았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댈 교수는 공동체의 목적이나 정체성을 희생하면서까지 개인 권리를 우선시하거나 심지어 절대시하는 경향이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도덕적 논쟁에 뛰어들기를 회피하는 문화적 태도와 결합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 리더들은 대부분 표면적으로나마 정의를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이 세대는 선택지를 제한하거나, 타인의 견해를 배제하거나, 뚜렷한 이념적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꺼려 했다.
미국의 기술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이 창조한 기술의 힘을 믿지만, 정작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은 진지하게 논의하려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가라는 더 큰 프로젝트와 존재 이유 같은 문제 말이다. 그러므로 이 엘리트 계층이 뭔가를 만들고 있다면 우리라도 무엇을 위해, 왜 만들고 있는지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교육기관과 문화는 중립적이거나 불가지론적일 정도를 넘어 이 세상에 대해 진정한 신념을 형성할 역량이 크게 떨어진 새로운 리더 계층을 탄생시켰다. 이 리더 계층이 신념을 잃으면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계획과 의도에 쉽게 이용될 위험이 크다.
우리는 단순히 프로그래밍 기술만 뛰어난 엔지니어가 아니라 세상과 역사의 흐름, 모순에 관심을 쏟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국가라는 개념, 어쩌면 국민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지적 전쟁을 계속할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다시금 요구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규범을 따른다. 이런 적응 본능은 생존에 매우 유익하나, 이렇게 강력한 동조 욕구는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주변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들도 있다. 이런 특정한 사회적 판단에 대한 둔감함, 집단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저항성이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링 문화가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상업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비판적 동조, 즉 대중의 불만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치명적일 수 있다.
1970년대 말 토요타자동차의 고위 임원이던 오노 다이이치는 자동차 산업의 제조 방식을 혁신한 토요타의 노하우를 설명하는 책을 펴냈다. 오노 다이이치는 이 책에서 근본 원인을 찾는 접근법을 제시했는데, 팔란티어는 약 20년 전부터 이 방식을 채택해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 이 방법의 핵심은 문제의 발생 원인을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수준이 아닌 근본적인 수준에서 파헤치는 것이다.
접근 방식은 언뜻 보기엔 간단하다.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묻고, 그 답에 대해 다시 ‘왜?’라는 질문을 4번 더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5Whys’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왜 기업용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중요한 업데이트를 금요일 기한까지 완료하지 못했는가? 첫 번째 이유는 팀이 초안 코드를 검토할 시간이 이틀밖에 없어서다.
왜 검토 시간이 이틀밖에 없었을까? 작년 말 예산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6명 줄여야 해서다.
왜 팀 예산이 줄었을까? 해당 부서 리더가 다른 부서 리더의 요청으로 우선순위를 변경해서다.
왜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요청이 있었을까? 특정 파트를 우선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새 보상 체계를 도입해서다.
왜 특정 파트를 키우기로 한 걸까? 회사의 고위 임원 2명 사이에 오래된 갈등이 있어서다.
예시에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기한을 넘긴 근본 원인은 특정 엔지니어의 부주의나 팀 전체의 능력 부족이 아니었다. 회사 최고위층에서 벌어지고 있던 갈등이 심화해서다.
여기서 어떤 조직이든 문제의 인과관계를 끝까지 추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직을 옭아매는 매듭을 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려면 문제의 표면을 넘어 더 깊은 원인을 캐내려는 끈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5Whys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려면 참여자들이 동료를 탓하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고, 실수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팔란티어는 지난 20년간 5Whys를 수천 건 검토했다. 그리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 시스템 전체의 관점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기록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의지, 다시 말해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실제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야말로 실리콘밸리의 신흥 거대 기업들이 크게 성장한 주된 이유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기술 공화국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이 엔지니어적 본능, 때로는 무자비할 정도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국가가 지향해야 할 공동 목표에 맞추는 것이다. 이 공동 목표는 우리가 누구이며, 또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를 정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비로소 찾을 수 있다.
결국 대중의 비난을 두려워하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 탓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기업들이 존재해야 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우리는 실제로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높이는 구체적이고, 때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성취와 개선보다 승리의 상징성, 극적 요소, 도덕적 우월감을 표현하는 외형적 과시를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를 바라보는 엔지니어의 접근 방식, 기술 공화국의 기반은 그런 구체적 성취와 결과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데 있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굶주림, 범죄, 질병 등을 줄이는 성과 중심의 도덕과 윤리 체계를 포기하고, 성과 자체보다 성과를 둘러싼 메시지 관리가 더 중요한 보여주기식 담론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기술 공화국을 다시 세우려면 역사적으로 인류 발전의 바탕이 되었던 국가적·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감각을 부활시키고 다시 포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천, 수만, 수백만, 심지어 수십억 규모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기반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고, 통합된 서사를 제공하며, 생존 그 이상의 목표를 위해 여러 사람을 하나의 대규모 조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걸까? 의심의 여지 없이 공유된 문화, 언어, 역사, 영웅과 악인, 이야기, 담론의 패턴이 어우러진 어떤 조합이다.
“도덕적 가치가 없는 사회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결속을 유지하기 어렵다. 공통된 가치 체계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새롭게 이주해 온 사람들의 집단적 이익을 지켜내려는 의지와 능력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은 종교나 전통 같은 뚜렷한 뿌리가 없는 세대의 인재들로 맹렬한 세속주의 말고는 어떤 가치에도 헌신하지 않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공적 영역을 다시금 선한 삶이나 덕 있는 삶에 대한 실질적 개념들을 안전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리콴유는 공자가 2,000여 년 전에 강조했던 군자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는 군자를 “부모에게 충성하고, 배우자에게 성실하며, 자식을 잘 양육하고, 황제에 충성하는 시민”이라고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이런 구체적이고 전통적인 덕성 개념은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저항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포용성의 이름 아래 버려진 기존의 미덕들 대신 과연 어떤 미덕을, 어떤 고귀하거나 모범적인 삶의 개념을 기꺼이 내세우고 지킬 의지가 있는가?”
제국이 몰락할 때마다 미덕을 추구하고 기르는 노력도 함께 버려졌다.
우리는 이제 공유된 문화의 포기가 아니라 부활이야말로 지속적인 생존과 공동체적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자들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은 공유된 문화적 전통, 신화, 가치를 긍정하는 게 한 국민의 노력을 조직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사려깊지 못한 민족주의를 키우는 데는 위험이 다른다. 하지만 공통된 삶의 방식을 전면 거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기술 공화국을 재건하려면 집단적 경험, 공유된 목적과 정체성, 결속시킬 시민적 의례를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기존 질서를 해체하는 게 정의롭고 필요했던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빈 자리에 함께 무언가를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알렉스 카프와 같은 기업인을 보유한 미국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본분을 넘어 국가와 자유민주진영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그의 포부와 비전이 너무나도 대단하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기업인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길 희망한다.
유럽의 난민 문제나 미국 내의 마약, 사회 갈등 등을 떠올려 보면, 세계화 이후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강조되면서 오히려 사회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모두가 다름을 존중하자는 목소리 속에서 정작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범과 미덕’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기업과 국가, 시민이 공통된 가치체계 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하나, 그 단결이 극단으로 치달아 전체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올바른 문화를 중심으로 질서를 세우고, 다양성과 자유가 함께 존중받는 균형 잡힌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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