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에게 배우는 이른 성공을 받아들이는 자세.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승기와 율곡 이이의 공통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이이는 5000원 권에 그려져 있는 학자입니다.) 그 답은 바로 두 사람 다 일찍이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이는 말할 것 없는 천재입니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구도 장원 공(九度壯元公) 과거시험을 9번 급했다는 뜻인데요. 지금으로 말하면 고시 시험을 9번 수석 한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이가 처음으로 급제한 나이가 22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승기는 어떨까요? 이승기는 한때 시청률 100%의 사나이라고 불렸습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요? 전성기 시절에 이승기는 드라마 시청률의 1위 〈찬란한 유산〉. 분당 최고 시청률은 46.83%을 기록했고, ‘1박 2일’ 역시 순간 시청률 42.30%였습니다. 또 이승기가 부른 ‘결혼해줄래’가 같은 날 〈인기가요〉순위에 오른 순간 시청률이 16.75%였습니다. 이 시청률을 다 더한다면 103.88% 말 그대로 이 당시 이승기는 황제라고 불리던 시절이었죠. 이 당시의 이승기의 나이는 23살.
이렇듯 두 사람은 모두 일찍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인생에서 3가지 불행 중 하나를 만납니다. 바로 소년등과(少年登科) 일찍 과거에 등과 한 사람은 불행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너무 일찍 성공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에서 교만해지기 때문이죠. 그럼 이승기는 어떻게 이 점을 이겨낼 수 있었을 까요?
한 인터뷰에서 이승기는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을 한다는 것은 직장에서의 승진과 똑같은 거 같아요." 연예인의 세계에서는 하루아침에 탑스타가 되기도 하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승기는 연예계를 직장인의 승진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23살에 연예계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성취를 얻었다. 연기부터 음악 예능에서까지, 그는 다 방면을 도전했고 각 분야에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승기는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꾸준하게 걸었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지점에 올라가면 다른 분야로 옮겨가서 그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성적을 거둬드렸다. 한 분야의 성공에만 취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승기의 모든 도전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영화의 관객수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가 하는 예능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승기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공백기 없이 꾸준히 다양하게 도전하였다. 마치 직장인이 회사에 출근하듯 말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도 한국인이 사랑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다가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처럼 소금 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계속 전진만 하라. 앞을 바라보되 절대 저 높은 계단 꼭대기 위의 찬란한 태양빛을 성급히 찾지 말라. 오르페우스처럼 에우리뒤케를 또 한 번 잃어버리게 될 뿐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오늘 지금 밟아야 할 계단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뿐이다. - 세이노의 가르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