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재미와 의미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가 위험한 이유

by KEIDY

최근 들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던 일이 있는지 떠올려 본다. 시간에 쫓겨 초조해한 적은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몰입한 적이 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다. 그러한 감각을 잃어버린지 참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은 원래 재미가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까?


칙센트미하이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개념인 "몰입(Flow)"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몰입"하는 순간에는 시간의 흐름도, 다른 중요한 일들도 잊고 심지어 본인의 존재조차도 잊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몰입"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는데 몰입하는 순간이 많을수록 즐겁고 의미있는 순간을 많이 갖는다는 가정 하에 성립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몰입"을 잃어버린 요즘, 그렇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인가, 스스로 되물어 본다.



예전에는 어떤 것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삼았다. 목표 하나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온 힘을 모으고, 열심히 달려간다.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열정적인 태도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너는 왜 그렇게 열과 성을 다 해서 일 하지 않니?"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왜냐면, 나는 정말로 열과 성을 다 해서, 열정적으로 하는데 그걸 몰라준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뭔가 하나에 파묻히고 집중해서 모든 노력을 쏟아내야만 일을 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사실, 직장인들에게 "몸을 갈아넣어" 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묘사이고 그것은 마치 그 일에 쏟는 시간과 애정을 표현하는 말로 미화되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갈아넣지 않으면,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게 "일 한다는 의미"이며 많은 직장인이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에 가까웠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갈아넣어야만 일을 "잘 하는" 것일까? 모든 것에는 체력, 시간, 정신적 에너지, 돈 등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털어넣어서, 고작 얻는다는 것이 "XX씨, 열심히 하네" 한 마디와 일을 다 해 냈다는 "뿌듯함"정도라면 과연 수지타산이 맞는 일인지 싶다. 사실, 경제적 관점에서도 적은 자원을 투입해서 가장 많은 결과물을 얻는 것이 가장 최선이지 않은가. 그런데 "일"의 관점에서는 all-or-nothing(모두 털어넣거나 아예 안 넣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all-and-nothing(모든 것을 털어넣었는데 남는게 별로 없다...)이 된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 초창기만 해도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 야근을 많이 하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본인의 개인 시간까지 투여해가면서 일을 떠맡는 사람을 선호하고 그 사람들에게 승진의 기회를 더 부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까지 많은 보수적인 기업들이 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어떤가. 뼈 빠지게 일하고 몸을 갈아넣어서 일한 다음 승진을 한다고 치면, 그 반대급부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회사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자녀들과의 관계도 삐걱대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완벽히 해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보통 사람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평가했을 때는, 일에 모든 자원을 투자했을 때의 결과가 전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몰입으로 돌아가 본다. 몰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가끔 찾아올 때는 너무나 반갑다. 그러나 매일, 매번, 매순간 몰입을 한다면 내가 삶의 주도권을 갖는 순간도 잃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치고, 그로 인해 몰입하는 순간이 많은 것이 행복의 잣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점점 더, 일의 재미와 의미를 찾게 된다. 그리고 특정 업무에서 의미와 재미를 못 찾을 경우에는 실망하기도 하고, 혹시 나만 못 찾은 것은 아닌지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놀이가 재미있지는 않은 것처럼, 모든 일이 재미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일의 의미는 그 일을 하는 순간에 찾는 경우보다는 그 일을 다 마쳤을 때, 그리고 때로는 한참 전에 끝난 일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이 당장 내일, 아니면 한달 뒤, 10년 뒤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그 때 가봐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일의 의미는 그 일 하나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일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특정한 패턴을 그려낼 수 있을 때 더욱 의미가 커진다. 그렇기에, 당장의 일의 재미와 의미가 없다고 해서 자포자기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일을 할 때는 꾸준함과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당장 어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모든 걸 갈아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게 행복이랑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연스레 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이 생긴다. 그러한 시간을 확보하게 되면, 일의 의미가 시간이 깊어질수록 더욱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깨달음이 몇 번 찾아오게 되면 일의 재미 또한 순간적으로 찾아오게 된다. "내 일은 재미가 없어", "내 일의 의미를 모르겠어"에서 "일을 꾸준히 하게 되면 내 업무에 의미가 생기고, 그 의미가 모여 재미가 된다"는 귀중한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금의 선택이 최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