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새벽에 아이가 깼다. 옆방에서 끙끙 소리가 나더니 결국은 목놓아 엄마를 부르며 운다. 마음은 일어났는데 몸이 아직 안 움직이는 건 아직 잠이 덜 깬 탓이겠지. 비몽사몽 한 정신에 아이를 토닥이러 간다. 금방 쌕쌕 소리를 내며 다시 잠든 아이가 행여나 깰까 봐 숨죽여 몸을 일으키는데 바닥에 깔린 매트에 발이 닿으니 삐빅, 하고 살짝 소리가 나 아이가 금방 다시 칭얼거린다. "엄마 여깄어~" 하며 다시 토닥이기를 10분. 아니, 20분인가?
이번에는 최대한 몸을 천천히 움직여 바닥으로 내려와 무릎으로 살살 기어 나간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가도 아이가 다시 깨지 않았으니 좀 볼썽사나워도 다음에도 무릎으로 기어 나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새 아이가 늦게 잠들다 보니 아침에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다. 8시 30분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면, 7시 40분이 아이를 깨우는 마지노선이다. 그냥 깨우면 또 짜증을 한가득 낼 게 뻔하니 문을 활짝 열고 일부러 소리를 내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바나나를 썰고, 우유를 꺼내고, 빵을 데우거나 시리얼을 그릇에 붓는다. 물도 한잔 따라두고, 어린이집 가방도 챙기고, 마스크도 미리 꺼내 두고, 갈아입을 옷과 기저귀도 거실 매트에 다 꺼내놓는다.
아이가 깨자마자 아침을 먹이고 바로 준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 후, 이제는 심호흡을 하고 아이를 본격적으로 깨우러 들어간다. 아이 귀에 속삭이며 이불을 들추고 살짝 안는다. 우우우웅 소리를 내며 "아빠 어딨어?" 물어보는 걸 보니 잠은 다 깬 모양이다. 아이를 안아서 조금 토닥여 주고 바로 아기 의자에 앉힌다. 분명 어린이집에서는 혼자서도 잘 먹는다고 했는데, 음식을 놓아주고 먹는 걸 지켜보면, 먹긴 먹는데 세월아 네월아 너무 느리다. 이러다가 밥 먹는데 30분은 걸릴 것 같아 결국은 또 숟가락으로 시리얼도 떠먹이고, 바나나도 입에 넣어준다. 엄마가 먹여주는 동안 아이는 장난감을 꼼질꼼질 갖고 놀거나 원하는 책을 갖다 달라고 엄마에게 주문한다. 하필 그 책이 어디 있는지 안 보여서 비슷한 책을 여러 권 가져다 주니 이게 아니란다. 그 사이 입에 음식을 한입 더 먹여주고 다시 책을 찾으러 간다.
휴, 아까는 맘이 급해서 안 보이더니 하나하나 뚫어져라 보면서 찾으니 바로 눈앞에 있었다. 책을 조금 보는가 싶더니 동요를 틀어달라고 한다. 요새 "엄마가 골라줘"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정작 엄마가 골라주는 동요는 또 아니란다. 말은 "엄마가 골라줘"인데 실상은 "내가 뭘 듣고 싶은지 관심법으로 찾아내시오"라는 의미다. 몇 가지 후보군을 계속 틀어줬더니 다행히도 한 노래가 낙점됐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가 내일도 동일할 리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동요를 맘에 들어했는지 기억해 둔다.
아침을 다 먹이고, 세수와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로 데려가려는데 갑자기 엄마랑 퍼즐 갖고 놀고 싶다고 한다. 어린이집 다녀와서 하자, 라며 달래지만 바닥에 납작 드러누워 일어날 기미가 없다. 억지로 안아서 화장실로 데려가는데 세면대 앞에서 다리에 힘을 주지 않고 일부러 주저 앉는다. 겨우 달래서 세수를 시키고 이를 닦이는데, 이제는 세면대 손잡이가 닿을 만큼 팔이 길어져서 물을 틀었다 껐다 장난을 친다. 물이 사방팔방 튀고 옷소매도 젖는다. 하지 말라고 강하게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결국은 손잡이를 힘으로 꽉 눌러 가면서 겨우 이를 닦이고 빨리 화장실 밖으로 내보낸다. 이제 옷을 입힐 차례인데, 아이는 벌써 쪼르르 제 방으로 들어간다.
옷을 입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또 싫단다. 엄마랑 방에서 블록 갖고 놀 거라고 한다. 또 어린이집 다녀와서 하자, 라며 달래는데 순순히 방에서 나오는가 싶더니 옷은 누워서 입겠다고 한다. 누워있는 아이 옷을 벗기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겨우 끙끙대며 윗도리를 벗겼는데 그 새 벌떡 일어나 방으로 도망간다. 아이를 다시 붙잡아서 윗도리를 갈아입히는데 이번엔 단추를 끼우기도 전에 또 벌떡 일어나 도망간다. 바지를 벗기는데 기저귀를 차기도 전에 또 슝 하고 달아난다. 서너 번 붙들고 나서야 겨우 전쟁 같은 옷 갈아입히기가 끝난다.
기온을 보니 상당히 추운 날씨다. 좀 더 두꺼운 겉옷을 입히려 가지고 나오는데 또 싫다고 아우성이다. 초록색 옷을 입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결국은 옷을 다시 걸어둔다. 모자도 씌우려 하는데 갑자기 이 모자는 싫고 다른 모자가 쓰고 싶다고 한다. 세 번 정도 다른 모자를 씌워줬더니 드디어 하나가 간택되었다. 장갑을 끼우는데 갑자기 장갑을 안 끼겠다고 한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장갑을 안 끼면 손이 시릴 거라고 계속 얘기해줘도 싫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한숨을 쉬면서 장갑은 어린이집 가방에 넣는다. 하원 길에는 꼭 끼워달라고 선생님께 부탁해야겠다.
꼼질거리는 아이를 번쩍 들어 신발을 신기고, 자전거를 태운다. 이제 현관문을 나서려는 찰나, 갑자기 담요를 달라고 한다. 담요? 담요는 방에 있으니 이따가 준다고 했는데 담요를 부르짖으며 고집을 피운다. 현관문 근처 신발장에 담요를 하나 넣어둔 게 기억나서 담요를 꺼내 덮어준다. 그랬더니 이 담요가 아니고 분홍색 담요란다. 갑자기 화가 난다.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겨우 나가려고 하는데 분홍색 담요를 달라고 저렇게 생 난리를 치니,,, 게다가 분홍색 담요는 회사에서 덮으려고 두고 왔기 때문에 지금 집에 있지도 않다. 아침부터 꾹꾹 눌러온 참을 인 세 개가 이미 한도를 넘었다.
버럭 화를 내니 아이는 갑자기 갈색 담요를 덮고 가겠다고 한다. 일단 그 담요라도 덮겠다고 하니 꼼꼼히 몸을 덮어주고 집을 나선다. 아이도 엄마가 화를 내니 급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평소에 내가 목소리가 굳어지거나 높아지면 아이는 "엄마, 화났어?"라고 물어본다. "아니, 엄마 화 안 났어"라고 대답하며 화를 가라앉힐 때도 있고 "맞아, 엄마 화났어!"라고 받아칠 때도 있다. 그럴 때 아이는 또 "엄마 화 안 내(엄마 화내지 마)"라고 답한다. 보통 그쯤 되면 나도 화를 가라앉히고 아이를 토닥여 준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 화났어?" "엄마 화 안 내"도 안 하고 그냥 "이 담요 덮을 거야"라고 말하며 얌전히 자전거에 앉아있다. 오히려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더 짠해진다. 엄마에게 관심받고 싶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그저 엄마랑 아침에 놀고 싶은 건데 엄마는 내 맘도 몰라주고 매일 어린이집에만 데려다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도 회사에 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은데(음... 거의 항상 그렇지만...ㅎㅎ) 아이 또한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을 텐데. 그러한 날에도 회사를 가야 해서, 아니면 연차 날 나도 푹 쉬고 싶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아이는 그저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담요 하나에 화를 내다니. 새로 이직한 회사는 완전한 자율 출퇴근제라 출근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정해진 일정만 없다면 늦어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깟 담요가 뭐라고, 아이에게 아침부터 큰 소리를 쳤는지... 미안할 따름이다.
얼마 전, <아들의 뇌>라는 책을 읽으며 엄마와 아들은 다른 성별이기 때문에 뇌구조에 차이가 있어서 서로의 방식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가면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그 사이 마치 엄마가 화낸 것을 잊어버린 마냥 즐겁게 동요를 부르며 가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 알까. 나의 진심을 알아줄 수 있을까. 아이에게 엄마를 이해해달라고 먼저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