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장 신경 쓰며 보내야 할까?
결혼 전까지, 그리고 사실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나"의 정체성은 직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많은 역할들 중,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가장 가치 있기에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는 것만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보람 있게 생각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비교적 사회생활을 일찍 한 편이라서 나이 대비해서 직장생활 연차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발탁 승진을 한 적도 없고 매번 칼같이 승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경력사항을 고려했을 때 승진도 늦지 않은 편이었다. 연차와 나이를 고려했을 때는 오히려 빠르다고 느껴져서 그 부분을 속으로 굉장히 뿌듯해하고 은연중에 자랑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늦지 않게 아이도 가졌다. 요새 사회생활을 빠르게 시작하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결혼연령도 늦어지고, 그에 맞춰 출산연령도 점차 늦어지는 추세이기에 30대 중반에 아이를 낳은 것은 평균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처음으로 회사생활에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첫 회사, 10년 넘게 다닌 소중한 내 일터. 심지어 아이를 낳은 해에 10주년 근속상을 받으러 시상식에도 직접 갔다. 그만큼 회사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고 나의 정체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회사생활의 첫 쉼표는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었던 나는 출산 2주 전까지 근무하고 1년 정도 휴직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예정일 2주 전에 맞춰 휴직에 들어갔는데 아이는 휴직하고 3일 만에 출산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계획에 조금씩 차질이 생겼다. 게다가 갑자기 회사의 정기인사가 1달 당겨지면서 나의 휴직도 그에 맞춰 끝내기로 했다. 아직 아이가 돌이 안 되었는데 복직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정기인사 때 복직하지 않으면 어느 부서로 어떻게 발령 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집 근처로 대기를 걸어둔 국공립 어린이집들에서는 입소 연락이 오지 않아서, 초조한 마음에 맘 카페 글들을 찾아보니 아이 한 명이면 거의 자리가 바로 나지 않는다는 글들이 많아 시댁과 친정에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글렀으니 내년을 기다려 보며 1년간은 아이를 집에서 돌봐 주시기로 얘기가 끝났는데, 아주 운 좋게 집 근처 어린이집에 덜컥 붙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복직할 때도 현장직이 아닌 다시 본사로 발령이 나서 비록 그동안 해 왔던 업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워라밸 맞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복직한 지 얼마 안 되어 코로나19가 터지고,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만약 복직을 한 두 달 늦췄더라면, 아마 복직 신청을 할 때 인력이 부족한 현장으로 발령을 냈거나 아니면 휴직을 좀 더 쓰라는 권고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운 좋게 복직 막차를 탄 기분이었다. 그리고 오프라인 매출이 대부분이었던 회사는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고 주 1일씩 무급휴직을 권고하기에 이르러,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육아기 단축근로 신청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회사에서 첫 사례로 단축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나는 전체 월급에서 줄어든 근무시간 비율로만 월급이 깎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회사의 복잡한 월급 구조 상 특정한 수당이 다 빠지고, 기본급에서 또 줄어든 근무 시간에 비례해서 월급이 깎였다. 아이 얼굴을 한두 시간 더 보는 것은 좋았지만 매일 출근하고 근무시간도 적지 않은데 월급의 1/3 이상이 깎이는 게 너무 황당하여 단축근무는 한 달만 하고 부랴부랴 취소 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아이 하원을 직접 하면서 아이와 손 잡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매우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등원과 하원을 직접 해서 그런지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고 나 또한 하원길에 놀이터에서 행복하게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치열하게 일하는 시간보다 지금이 더욱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바로 이 시기에, 나는 점차 직장인으로서의 내 정체성보다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강해졌음을 느꼈다. 어느 날, 오랜만에 기분 전환 차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려고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는데 사진첩은 온통 아이의 사진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몇 번의 스크롤로 화면을 올리고 나서야 아이 사진이 아닌 사진들이 나왔는데 이러한 사진들이 지금 내 현재를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과거 시절의 사진들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진첩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맛있는 음식이나 디저트, 분위기 있는 풍경, 의미 있는 행사, 영감을 주는 인상적인 장면 등의 사진이 많았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러한 것보다는 아이의 다양한 표정과 순간들이 담긴 사진이 더욱 소중해진 것 같다. 그리고 특정 장소에 갈 때도, 그 장소가 너무 맘에 들면 나도 모르게 이 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오면 여기를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들이 무의식적으로 들면서 아이와 함께 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공간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공간에서 자유 주제로 글을 써 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도, 내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것은 그날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그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아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온갖 기억들과 감정이 솟구치면서 평소 같았으면 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엄청 고심했을 글 쓰기도 그날은 수월하게 휘리릭 쓸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엄마이면서도 직장인이기에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 80%, 나머지 역할들로 20%가 채워졌다고 하면 요새는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내가 거의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굳이 숫자로 따지자면 40%, 40%? 예전에 직장인 정체성 비중이 80%였던 것에 비해 반토막이 나고 그 자리를 엄마라는 역할이 순식간에 동일한 위치를 차지해버렸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똑 부러지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쉼 없이 일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를 낳고 나니, 그러한 빈틈없이 일에만 몰입하는 삶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회사에서 육아휴직 이후 원래 하던 업무로 돌아가지 못했고 승진에서도 미끄러지다 보니 이미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각오하긴 했었지만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수에 흔들리는 회사생활에서 내가 전력을 다 한다고 한 들 그걸 온전히 알아줄 일이 있을까, 하며 무기력감과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방황하던 와중, 어찌어찌 팀장이 되고 원래 하던 업무로 복귀하긴 했으나 이에 대해 감사한 마음 또는 다행스러운 마음이 든다기보다는 오히려 그저 이제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 나를 그냥 다시 이 자리로 배치한 것뿐이구나, 하면서 조금은 씁쓸해했었다. 물론 회사생활을 오래 했기에 회사 가모든 사람의 상황과 커리어를 고려해 가면서 발령을 내는 것은 아니며 승진 또한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 때로는 그 순간의 운과 상황의 조합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미 섭섭해져 버린 마음을 돌이키기에는 좀 늦어버린 감이 있었고, 그렇기에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결심하면서 업무에만 가치를 두는 삶이 아니라 반반의 균형을 잘 잡는 삶을 목표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한 회사의 팀장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며, 배울 점이 많은 남편의 아내이고, 세 자매의 둘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은 앞으로 내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더 추가될 수도 있고, 때로는 상황에 따라 역할의 중요성이 바뀌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중요성들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정체성들을 한 데 모아야지만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여러 정체성을 다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개라도 0%가 돼서는 안 되고 그 중요도 순서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나는, 어떤 정체성을 가장 신경 쓰며 보내야 할까. 매일의 균형이 모인다면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이 좀 더 쉽게 예측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