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한 쉽고 간결한 메시지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굉장히 매니악한 콘텐츠여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극장판이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이 서비스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 또한 일본이라는 특수한 문화권 내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극장판은 220만이 넘는 스코어를 기록했고 애니메이션도 왓챠뿐만이 아니라 넷플릭스에도 서비스를 시작했다.(한국 서비스 기준). 왜 이 콘텐츠가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 것일까? 콘텐츠가 담고 있는 표현방식과 메시지에 집중하여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첫 번째 이유. 이 세상에 없는 "정의"
요새 "정의"라는 단어가 화두이다. "정의"의 의미는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어 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의미인 "옳은 것을 판단하고 행한다"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사고들이 현실과 사이버 공간에서 전파되고 있는 내용을 볼 때 정의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며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매우) 힘든" 가치이다.
그런데 이 콘텐츠의 주인공인 탄지로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낸다. 탄지로는 본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남을 돕는다'. 그리고 '남을 믿는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저러한 가치를 실천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오죽하면 남을 잘 믿는 사람을 오히려 어수룩하고 세상 물정 모른다며 비웃겠는가.
그러나 탄지로는 본인과 가깝게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굉장히 신뢰하며, 거의 모든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돕는다.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정의"라는 가치의 중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비록 개개인은 여러 사정에 의해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탄지로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보면서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에서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아닐까.
특히, 극장판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렌고쿠의 캐릭터는 본인이 있는 한 혈귀(작품 세계관에서의 괴물)가 사람을 한 명이라도 죽게 놔두지 않겠다고 한다. 비현실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오히려 현재의 정의롭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 가족은 언제나 옳다.
주인공 탄지로가 험난한 혈귀 사냥꾼의 길을 걷는 이유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즉 혈귀가 되어버린 유일한 혈육 여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기 위함이다. 만약 모든 가족이 몰살당했더라면 차라리 죽는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 끈끈한 가족애가 바탕이 되어 올곧은 삶을 살아올 수 있었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내는 희생정신이 생긴 것이다.
극장판에서도 혈귀가 탄지로의 마음을 시험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탄지로의 가족에 대한 탄탄한 신뢰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해체되고, 다양한 대안 가족들의 형태가 생기며 가족 간의 유대감이 많이 약해져 있다. 하지만 "가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 의미는 현대에서도 유효하다.
물론, 남보다 못한 가족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의 의미는 혈연을 넘어서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이 콘텐츠에서는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그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세 번째, 게임 같은 연출기법
이 콘텐츠(극장판, 애니메이션)는 2D이다. 그러나 콘텐츠를 보면 마치 3D, 4D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게임의 한 장면 같은 생생한 전투 장면이 이 콘텐츠를 더욱 볼만하게 만들어 준다. 초월적인 힘과 속도를 지닌 괴물, 혈귀와 맞붙는 장면에서는 빠른 화면 전환을 통해 속도감을 강조하고 근접전을 펼치기 위해 다가갈 때는 카메라를 줌인하듯 화면이 훅 들어가는 연출을 사용한다. 주변 사물들(나무, 건물 등)도 입체감 있게 그려지고 극장판에서는 거대한 기차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기차 또한 3D처럼 원근감 있게 연출된다. 감정선과 스토리가 강조되는 부분은 차분하게, 치열한 전투 장면에서는 몰입감 있게 연출한 부분이 극에 긴장감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재미도 있으면서 눈도 즐거운 콘텐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나서 극장판을 보았다. 확실히, 이 콘텐츠가 왜 인기가 있는지 직접 보니 알 것 같았다.
"정의"를 구현하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캐릭터가 그려내는 이야기가 감정의 널을 뛰게 만든다. 싸울 때는 긴장되고, 희생할 때는 눈물이 나온다. 좌절할 때는 관객들 마음도 한없이 무거워지고,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 또 가슴이 벅차오른다.
다양한 메시지를, 현시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직한 가치를 정공으로 풀어내면서도 캐릭터에 공감하게
만드는 쉬운 표현 방식이 이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소구 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추후에 나올 시리즈물과 극장판 또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