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성숙하게 극복하기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평 일색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영화를 보았습니다. 첫 장면부터 귀에 익숙한 노래 'Creep'으로 시작하더니, 스타로드의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모든 장면에 찰떡같은 선곡으로
눈도, 귀도 호강하는 즐거움을 맛봤습니다. 사실 제가 70~80년대 음악에 좀 더 조예가 깊었더라면 더 즐거웠을 텐데요. 그래도 왠지 모르게 '이 음악이 딱 맞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든 것을 보니, 훌륭한 음악 연출이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상실'이라는 주제를 떠올렸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다양한 '상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일단 시작부터 스타로드는 사랑하는 연인 '가모라'를 잃고 상심에 겨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흔히 '상실'이라고 하면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에 대해서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더 슬픈 것은 사실 물리적으로 '가모라'라는 생명체는 존재하지만 연인이었던 '가모라'는 없다는 것인데요. 전작 어벤저스에서 가모라는 사망하지만 여러 떡밥과 이상한 설정이 난무하는 마블 세계관 내에서 스타로드와 연인이 되기 전의 가모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기에 스타로드는 자신과의 추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가모라를 보며 사랑하는 연인이 있지만 없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고, 이는 깊은 상실감으로 이어지죠.
스타로드는 연인을 잃었지만, 가모라는 기억을 잃었습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잊는 것입니다. 물론 가모라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송두리째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스타로드를 만나고 가디언즈오브갤럭시 멤버들을 만나 같이 고생하긴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날아간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잃는 것 또한 상실의 종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상실증 환자들이 자신의 과거와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때로는 막연하게 그리워할 때가 있는데, 이 추억이 본인에게 중요한 존재와의 기억이었다면 더더욱 무의식 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드랙스 또한 딸을 잃은 경험이 있고 맨티스는 부모를 잃고 고아로 키워졌죠. 생각해 보니 그루트도 원래 몸인 본체를 잃고 다시 베이비그루트가 되어 자라난 경험이 있고요. 예전에는 적이었지만 이제는 동료가 된 네뷸라는 아예 신체를 개조당해서 본인의 몸을 잃어버린 케이스죠. 가디언즈오브갤럭시의 멤버들의 공통점은 "상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3편에서는 '로켓'의 상실에 가장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화 첫 시작은 스타로드의 슬픔으로 시작하지만, 그들의 삶의 터전인 노웨어가 침공당하면서 로켓을 탈취하려는 악당이 들이닥치는데요. 알고 보니 로켓은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실험체 중 하나로 그의 손아귀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과거가 있습니다. 실험체 로켓에게 치료를 하지 못하게 암호를 걸어두었기 때문에 생사를 넘나들 만큼 심각하게 다친 로켓을 위해 스타로드는 자신의 슬픔을 뒤로하고 적극적으로 적을 타파하러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로켓의 과거 정보가 계속해서 밝혀지는데요. 로켓과 비슷한 시기에 생체실험을 당했던 여러 동물들이 있었고, 이들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실험체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들의 실험에 협조하며 삶을 이어나갑니다. 여러 생체실험을 통해 로켓은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되고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러한 성과를 낸 것에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이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된 로켓에 대해 질투하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로켓과 다른 동물 친구들은 언젠가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자신들을 신세계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버티는데요. 어느 날, 로켓은 자신들이 아니라 후속 실험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종족만을 신규 정착지에 안착시킬 것이며 그들은 몰살당할 것임을 알게 됩니다. 로켓은 뛰어난 두뇌를 가졌기에 탈출 계획을 짜고 친구들을 먼저 감옥에서 탈출시키려는 찰나, 로켓의 이러한 행동을 예상한 하이 에볼루셔너리에 의해 친구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합니다. 분노한 로켓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탈출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은 로켓은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죠.
영화에서 로켓은 많은 상실을 겪습니다. 첫 번째로 생체실험을 통해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소속감을 잃습니다. 두 번째로 변화된 뇌와 유전자는 단어 그대로 기존과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본연의 자기 자신 또한 상실합니다. 세 번째로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받은 친구들을 잃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친구들을 신세계로 데려가 줄 것으로 믿었던 창조주 하이 에볼루셔너리와의 관계도 잃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상실을 경험한 셈인데, 그렇기에 평소에는 틱틱대지만 첫 동료 그루트와 가디언즈오브갤럭시 멤버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상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 가디언즈오브갤럭시 멤버들의 극복 방안도 다양합니다. 스타로드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가모라라는 새로운 존재를 인정하고, 다른 소중한 존재인 로켓을 구한 후, 그동안 부정했던 자신의 뿌리인 지구에 남은 유일한 혈육 할아버지를 만나러 떠납니다. 드렉스는 자신들이 새롭게 구해낸 종족의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루트는 "I'm Groot"외에 새로운 문장을 배워 가모라에게 진심을 전달하고요. 가모라 또한 기억을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새로운 가족 라바저스와 함께 새 출발을 시작합니다. 네뷸라는 언니 가모라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노웨어를 수호하는 존재로서 다시금 태어납니다. 맨티스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용감하게 떠나고요.
모든 이들이 상실을 훌륭히 극복하는 가운데, 이번 편의 주인공 로켓 또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로켓은 친구들은 죽고 자신고만 살아남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새롭게 실험하던 고등 생명체 종족을 구하고, 그와 더불어 우주선에 남아있던 다른 동물 실험체들까지 모두 구하면서 생명은 살아있는 것 자체로 소중하며 누구든 살아있을 권리가 있음을 몸소 실현합니다. 게다가 그동안 두려워하던 하이 에볼루셔너리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적극 활용해 그를 물리치며 스스로를 구원하죠.
사람들은 각자 어떤 상실을 겪느냐에 따라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으며, 극복하는 방법 또한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빨리 극복하려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며 본인의 의지 또한 중요합니다. 영화를 보며 누구나 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저 좌절하고 포기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