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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Feb 05. 2024

초강력 눈치와 나이의 상관관계

 어느 날 친구가 한 웹툰의 캐릭터를 캡쳐해서 보내주며, ‘네 생각 나서 보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캐릭터는 IT업계에서 꽤 높은 직책의 여성 관리자로, 업계 특성상 같이 어울리는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 나이에 대한 발언에 민감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일을 잘 해서 승진도 빨리 하고 주변으로부터의 인정과 존경도 받는 부러운 캐릭터인데 스스로는 트렌드에 뒤쳐진다고 생각해서 주위의 사소한 반응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좀 받는 것 빼고는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내 생각이 났다는 친구에게 밥이라도 사야 하나 싶었는데, 이 캐릭터가 가진 몇 가지 특징이 지금 내 모습과도 겹쳐 보이면서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물론 나는 이 웹툰 캐릭터만큼 지위가 높지도 않고, 엄청 잘 나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공감가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 


  IT 업계만큼 콘텐츠 업계 또한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젊은 사람’은 비단 실제 나이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감각을 가진 사람’ 또는 ‘요새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콘텐츠 업계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 중에 실제 나이를 들었을 때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나이에 비해 외모가 동안인 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패션 센스가 아주 뛰어나다거나, 또는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소비하는 감각이 매우 트렌디해서 전혀 그 나이로 생각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곳이기에 나 또한 그 감각을 가능한 유지하려, 아니 필사적으로 따라가려 노력했다. 물론 이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 밖에서는 우아하게 헤엄치는 것 같은 백조가 물 아래에서는 쉼 없이 물갈퀴짓을 하듯이 하루 자고 일어나면 또 바뀌는 트렌드, 폭발하듯 넘쳐나는 요즘 콘텐츠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리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간극을 느꼈기에 약간 내려놓긴 했으나, 유행하는 어떤 단어를 듣고 다 같이 웃을 때 감정적으로는 안 웃겨도(실은 이 부분이 제일 슬프긴 하다) 뜻이라도 파악하고 있으려는 정말 최소한의 노력이다. 


 나이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조금은 슬프다. 이제는 3보다 4에 가까워진,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만으로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10 중에 9는 나쁜 것들로 채워지지만 그 중에서도 좋은 1을 찾자면 눈치가 생긴다는 점이다. 실은 내 타고난 성격은 눈치가 다소 없는 편인데(굳이 따지자면 눈치가 없는 것 반, 눈치를 안 보는 것 반 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눈치 레벨이 조금씩 올라간다. 물론 원래 처음부터 눈치가 있는 사람, 즉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고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사회생활을 첫 시작할 무렵에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많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는 내 얘기를 하기 바빠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듣는지 그닥 신경쓰지 않고 일방적인 의사 전달만 했다면, 요새는 미묘한 분위기 변화나 표정 감지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이 레이더는 때론 내 상황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가끔 꺼지거나 오류가 생기지만, 나는 원래 민감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부가적인 기능이 추가로 생긴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예전보다는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서 주위 환경의 단서를 찾을 수 있기에, 분위기나 표정 등의 변화가 감지되면 내 행동을 멈추거나 화제를 돌려 서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앞서 언급한 웹툰 캐릭터는 30대가 되면서 ‘초강력 눈치’를 선물받았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표현에 매우 공감이 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왜 젊었을 때는 이걸 몰랐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어떤 스킬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고, 어떤 스킬들은 내가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획득되지 않는 것이 있다. 시간과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지만, 같은 시간과 경험에서 두 배로, 열 배로 얻어가는 사람은 그만큼 본인이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도 한참 남은 회사생활에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배워가려면 어떤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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