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IDY Feb 06. 2024

[대상관계in회사]네 안에, 나 있다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는 '투사적 동일시'의 개념

 최근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보게 되었다. 정신분석에서 파생된 대상관계이론은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는데 특히 초기 부모와 아이 관계(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엄마 – 자녀 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이때 형성된 관계 패턴이 평생을 걸쳐 반복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의 틀 역할을 하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던 중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예시로 나온 사례들을 읽어보니 회사 생활에서도 종종 접하게 되는 특정 장면듫이 떠오르면서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사적 동일시는 방어기제의 하나로 내가 가진 나쁜 또는 원하지 않는 속성을 내 안에서 분리시키고 그 속성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조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면 굉장히 개념적으로 복잡하고 어렵지만, 예시를 들어본다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여러 명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건설적이지 못하고 같은 의견만 반복되며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한 A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어휴, B 저 사람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의견을 못 내는데, 볼수록 짜증이 확 나네. 정말 한심한 사람이야.’ A는 속마음을 완전히 말하지 못하지만, B가 뭔가를 주장할 때마다 딴청을 피우거나 시계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뱉고, 직접적으로 반대하진 않으나 다른 방안은 없을지 물어본다. 열심히 의견을 내던 B는 회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반응이 좋지 않자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주장하던 내용 또한 빈약해진다. 결국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고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서 회의는 무익하게 끝나고 만다. 회의가 끝난 다음, A는 ‘거 봐, B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의견을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하고 B는 ‘오늘 회의는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지네. 한심한 의견만 실컷 내다가 끝나다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능력하다고 생각할 거야’ 하고 상심에 빠진다.


 A는 본인의 주장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만약 그 의견들이 본인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비현실적인 대안만 주장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기에 본인의 두려운 감정을 B에게 투사하면 이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닌 B의 것이 된다. 그리고 B가 계속 의견을 내도록 부추기고(“다른 대안은 없나요?”) 그가 주장한 의견에 대해 간접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면(딴청을 피우거나 한숨 쉬기) B는 그러한 피드백에 영향을 받아 왠지 의견을 말하기 두려워지고, 자신감이 줄어들고, 초조함으로 헛발질하는 의견들을 제시하게 된다. 원래 두려움은 A의 것인데 B에게 투사되고, B의 두려운 감정을 다시 A가 느끼고 B를 무능력한 사람처럼 여기면서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가진 나쁜 면, 즉 부정적인 감정이나 속성 등에 대해 자아가 약한 사람은 그게 내 것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나 자신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사람에게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데 동시에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분법적으로 둘 중 하나로만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도, 타인도 모두 이분법적으로 판단한다. 나에게 친절하면 좋은 사람인데, 어느 날 그 사람이 바빠서 내가 인사하는 것을 못 보고 지나쳤다면 그 순간부터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나는 좋은 면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쁜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는 나는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려면 내가 가진 여러 측면 중 나쁜 것은 내 것이 아닌 양 다른 사람에게 던지고, 나쁜 것을 투사받은 사람이 그 행동을 나에게 보이면 내가 아닌 그 사람을 비난하게 된다. 


 때로는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면서 왠지 모르게 찜찜하거나 묘한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러한 느낌이 들 때는 어쩌면 내가 가진 부정적인 면을 남에게 투사한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것을 내 것이 아니라고 자꾸만 밖으로 투척할 때, 실제 나 자신의 심리적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 못나고 부족한 부분도 나의 일부이기에 나 자신이 커지려면 이 부분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타인에게 느껴지는 부정적 감정이 언제나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감정을 느끼기 전에, 내가 혹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또는 내 기분을 전가한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는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을 그냥 피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이유를 좀 더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그러한 탐색을 통해 내가 가진 인간관계의 패턴과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단서를 찾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다소 어렵지만 흥미로운 ‘투사적 동일시’ 개념을 일상생활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강력 눈치와 나이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