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는 이유

개인의 의지만으로 모든 일을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는 순간

by KEIDY

"팀장님, A씨 그만둔다면서요."


나른한 휴일, 오후에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카톡을 보낸 사람은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는데, 이직 이후로도 종종 만나기도 했거니와 회사 내에서도 아직 연락하는 사람이 많아서 가끔은 내가 모르는 소식도 전해주곤 했다. 요새는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다가 후배가 불쑥 얘기한 A의 퇴사 소식에 조금은 심란해졌다. 그리고 A의 퇴사 소식을 이제는 회사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듣는 것 자체도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아무튼, A는 내가 잠시 TFT를 겸직할 때 같이 일했던 팀원이었다. TFT의 특성 상, 모든 인원을 전담으로 두지 않고 여러 팀에서 한 명씩 차출되어 오는 케이스가 많은데 그 중에서 A는 그 TFT만을 전담하기 위해 별도로 선발한 인력이었다. 나는 TFT의 간사(옛날 용어이긴 한데 일을 맡아 주선하고 처리하는, 주로 보고서를 쓰고 사무적인 일을 총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였는데 그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져)은 임원급이었으므로 TFT의 주요한 결정이나 실무적인 처리는 주로 내가 담당하곤 했다. 그 프로젝트는 최근 트렌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담 인력은 젊은 사람,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을 지원 형태로 받아서 선발하기로 했다. A는 여러 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사람이었다.


TFT 업무가 그렇게 강도 높은 것은 아니었고 종료 기간도 두 번 연장하여 최종 보고까지 기간은 넉넉한 편이었다. 하지만 TFT를 괴롭힌 건 업무의 강도가 아닌,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두 명의 높은 분이 프로젝트에 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열심히 고민해서 자료를 가져가도 한꺼번에 뒤집어 엎거나 방향을 다시 처음부터 잡아야 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TFT를 인큐베이팅하는 부문과 그 업무를 실제로 가져가는 부문이 다른 것도 골칫거리였다. 인큐베이팅하는 부문에서는 여러 방향을 다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실무를 담당할 부문에서는 한두 방향으로 미리 가닥을 잡아두고 깊게 파는 것을 원했다.


나도 회사 생활을 오래 했기에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어봤기에 이러한 핑퐁 치기, 엇갈린 의견 조율하기에는 이골이 난 편이지만, 이렇게 닳고닳은 나 조차도 가끔은 화가 솟구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A도 처음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TFT에 합류했지만, 실제 업무가 진척되기보다는 제자리에 자꾸 맴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 듯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A를 보면서 가끔은 너무 미안해지곤 했는데 그래도 TFT가 종료된 이후에 실제 이관되는 부서에서 잘 하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것이라고, 어차피 같이 하게 될 건데 이런 방향 저런 방향 다 겪어보는 것이 낫지 않나며 다독이곤 했다.


TFT 종료 이후 나와 A는 그 업무로 합류하기로 대략 이야기가 오갔었는데, 갑자기 조직이 개편되면서 나는 그 업무에서 빠지고 다른 팀으로 발령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TFT 종료 시점에 맞춰 그 업무는 해당 부문으로 넘어가며 조직이 새로 만들어지는데 거기에 나 말고 다른 TFT 담당이 합류하게 된 것이다. 나도 그 업무를 계속 하고 싶었기에 아쉬웠는데 내가 너무 그런 티를 내도 안 좋을 것 같아서, 내 실제 기분보다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비록 나는 같이 일하게 되지는 않지만 같은 부문으로 발령나니 어려운 일이 있거나 도움 청할 일 있으면 얘기해달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밥도 먹고, 가끔은 안부도 물어가며 그 팀의 업무를 지켜봤다. 물론, 신규팀으로써의 고충도 있었고 지금 코로나19로 투자금 확보 등 여러 상황들이 좋지만은 않아서 업무가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밝고 활기찬 인상이었던 A도 점점 가라앉은 표정으로 변해가는 것을 눈치채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뭔가를 말 하기에는 주제넘는다고 생각할까봐, 선뜻 말 걸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다른 팀으로 떠난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을 거는 것이 꼰대스럽게 느껴질까봐 조심스러웠던 것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퇴사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 구석에는 '올 것이 왔구나, 역시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씁쓸해졌다. 내가 A를 아주 잘 안다, 라고는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함께 일했던 5개월간을 돌이켜 보면 아주 열정적이고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어하는 의지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트렌드에 대해서도 열심히 조사해 오고, 같이 외근갔을 때도 근처에 아주 유명한 디저트 가게가 있다며 소개시켜주는 친절함도 있었다. 그리고 단순 업무를 반복해서 자료를 다시 수정하라는 다소 귀찮은 업무가 떨어져도 불평 없이 묵묵히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는 기저에는 새로운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앞으로는 더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일의 진행속도가 더뎌지고, 초반에 신사업이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벗어나는 시점이 오게 되면 고비가 찾아온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모든 일을 극복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는 순간부터 갈림길에 서게 되고, 진정으로 이 업무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건너건너 얘기를 들어보니, A는 퇴사를 결정하긴 했지만 그 이후 아직 아무것도 정한 바는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시점보다 그 전에, 좀 더 그의 고민을 들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러한 퇴사 결정이 하루이틀의 충동으로 쉽게 내려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내가 꺼내는 조언들이 A에게는 선택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될 것 같아서 말을 아끼기로 했다. 최근 많은 후배들이 회사를 떠나는 일이 잦아졌는데 굳이 요청하지 않으면 섣불리 조언하지 않기로 다짐했고, 그리고 그 후배에게도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은 후배가 퇴사하는 걸 보면 굉장히 마음 한 켠이 허전해진다. 그러나 A에게는 여기보다 더 나은, 더 좋은 다른 곳이 있을 것이고 예전에 보여준 그 열정적인 태도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A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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