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경매로 샀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 코베이옥션을 우연히 둘러보다가 무심코 입찰 버튼을 눌렀다.
8만 2천 원을 써넣자 “차순위 입찰자입니다.”라는 팝업이 떴다.
현재가는 7만 5천 원이었는데..
나보다 더 높은 금액을 미리 써둔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경매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역시 비밀 투표는 지켜져야 한다.
10만 원으로 다시 시도했지만 여전히 차순위.
그때 좀 욱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12만 원.
이번엔 됐다, 최고 입찰자.
11만 원부터 써 볼 걸..
그 후로는 조용했다.
경매 마감 3시간 전까지 아무도 재입찰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작품들을 구경하며 맥주 한 캔을 따고, 애매한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그림은 내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 마감 직전에 누군가가 11만 9천 원으로 다시 입찰을 시도했더란다.
1,000원 차이.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그래서 더 짜릿했다.
정확히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끝났다.
경매의 묘미는 결국 그 마지막 순간에 있다.
겨우 이겼다는 사실이, 그냥 이긴 것보다 훨씬 더 기분 좋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마지막 입찰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이 승리엔 서사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올해 4월, 화랑미술제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살까?' 고민했던 작품이 있었지만, 신인 작가임에도 가격이 150만 원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포기했다.
화랑미술제는 다양한 신인 및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국내 대표 미술 박람회다.
현장에서 판매자들이 카드 할부도 가능하다 나를 유혹했지만, 작은 그림 한 점도 400만 원이라는 말에 아주 주눅 들었다.
이번 그림은 그때보다도 한눈에 마음에 들었고, 가격은 1/10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경매로, 단 천 원 차이로, 짜릿하게 손에 넣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종류의 쾌감은 대게 반복을 부른다.
도박이 괜히 도박인 게 아니다.
물론, 가격이 가치의 전부는 아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게 있다면, 나에게도 이제는 나름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는 점이다.
나는 이 그림이 좋다, 그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아까 말했듯 11만 9천 원에 입찰한 사람도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벌써 다섯 번은 뒤돌아 그림을 쳐다봤다.
딱히 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자꾸만 눈길이 간다.
이렇게 나를 슬쩍슬쩍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그림은 제값 이상을 다 한 셈이다.
이제부터는 매일 볼 때마다
'흐흐.. 1,000 원 차이로 이긴 그림!' 하며 혼자 흐뭇해할 것이다.
세상에 이런 그림 하나쯤 가질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정말 꿀잠 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