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이 좋다

by 김동현


아아, 오해는 마시라.

그렇고 그런 붉은색을 말하는 건 아니다.

수상할 정도로 낫과 망치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정치 성향이 아주 뚜렷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붉은색은, 그저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붉은색이다.

뜨겁고, 맑고, 낯설지 않은.

그러면서도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최근 경매로 그림 하나를 샀다.

온라인 경매 플랫폼 코베이옥션에서. (광고는 아니니 걱정 마시라.)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강렬한 붉은빛의 산.

그 아래에는 풍년 같은 황금빛 대지가 펼쳐졌고, 그 사이를 푸른 강이 얇게 흘렀다.

구도도 좋았고, 채색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그 강렬한 색과 배치가 나를 붙잡았다.


'이건 못 참지.'

그림은 그렇게 내 것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붉은 계통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Orange and Yellow>를 가장 좋아했고,

박두진 시인의 시 중에서는 <해>를 특히 사랑했다.

어느 시점에선가 박두진의 시집에 삽입된 삽화가 로스코의 그림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둘은 전혀 관계없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연결돼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이미 2017년에 코베이옥션에 가입해 있었다.

이번에 로그인할 때 ‘이미 등록된 ID입니다’라는 알림창을 보고 의아해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무렵 나는 대학생이었고, 박두진의 시 <해> 초판본을 경매로 사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때였다.

하지만 가격은 200만 원.

학생 신분으로 선뜻 지르기엔 너무 큰돈이었다.

결국 포기했지만, 그 책은 지금도 아쉽다.


“해야 솟아라.”

그 첫 구절은 마치 형체 없던 욕망이 순간적으로 실체를 갖는 느낌이었다.


“달밤이 싫여.”

어딘지 절망과 혼돈을 단호히 거부하는 어조가 인상적이었고,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거기선 어떤 존재와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느껴졌다.


시는 언어로, 그림은 색으로, 경매는 선택으로 나를 이끌었다.

방식은 다 달랐지만, 전부 붉은색으로 묶였다.

그건 단순한 취향을 넘어선 어떤 감정의 흐름이었고, 내 안에서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박두진의 시, 온라인 경매 플랫폼이라는 현실적인 공간까지

그 모든 것이 붉은색이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다니 말이다.

이쯤 되면 ‘좋아한다’는 감정도 일종의 연결 작업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던 선들이 마음속에서 잇대어지고, 나름의 맥락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다시 말하지만,

내가 붉은색을 좋아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건 시를 읽고, 그림을 보고, 무언가를 꿈꾸던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하나의 결정체, 뭐 그런 셈이다.


하하,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나는 붉은색이 좋다.

나름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서.


Orange and Yellow by Mark Rothko

해 (초판, 고서희귀본, 박두진 제1시집) : 알라딘

image.png?type=w966 이 사진도 그래서 좋은가 보다.


KakaoTalk_20250703_214523553.jpg?type=w966 박광출 <홍산>, 41*32cm (액자 56*4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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