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⑤ - 북씨 레드 참여 후기
내게 온 네 번째 여름
‘놀러간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설렌다.
누군가 “어디 가?” 하고 물었을 때 “그냥 놀러가~”라고 대답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트레바리의 ‘놀러가기’ 제도를 통해 <북씨-레드>라는 낯선 모임에 가기로 했다.
선정 기준은 단순했다. 책 제목이 예뻤다.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놀러가기 신청 조건은 독후감 선착순으로 먼저 제출한 사람에게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
혹시라도 독후감을 쓰고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꽤 서운할 것 같았다.
다행히 이 모임에는 아직 아무도 독후감을 남기지 않았다.
가장 먼저 후기를 올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은, 의외로 괜찮은 자기소개가 됐다.
마치 놀러가기 고수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 채, 나는 승인 문자를 받고 안내 메시지를 읽었다.
“이번 모임은 여름 축제 컨셉입니다. 드레스코드는 바캉스입니다.”
바캉스.
바지 주름을 반듯이 다림질하고,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 나에게
바캉스란 단어는 제법 난해했다.
장롱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옷들을 떠올려보며 잠시 멈춰 섰다.
전달받은 식순은 마치 작은 마을 축제 같았다.
축제 이름 낭독과 치얼스, 감사 선물, 축하 공연, 부채 만들기, 수박씨 꾸미기, 릴레이 소설, 그림일기, 그리고 폐회사까지.
‘이걸 정말 다 하는 걸까?’
미리 보내준 축제 이름 낭독문을 열어봤다.
공백을 제외해도 300자가 넘었다. 그것도 한 호흡으로 낭독해야 한다니.
나의 폐활량은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것이었고
외부인으로서의 어설픈 진심은 몇 차례 연습 끝에 결국 ‘웃자’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책은 서정적이고 고요한 에세이였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책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사람들이 모였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북씨-레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축하 공연은 파트너님의 리코더 독주였다. (꽤 멋있었다.)
부채 만들기에는 형광색 물감이 칠해졌고
릴레이 소설은 제목처럼 오들오들, 다소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열정의 바깥을 걷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분위기라는 건, 스며드는 데 능숙한 성격을 지녔다.
결국 나는 드레스코드부터 폐회사까지, 모든 순서를 함께했다.
행사가 끝나고 새벽 1시에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하루를 넘겨 돌아오다니’ 하고 피식 웃음이 났다.
아주 요란하고, 나로선 보기 드문 여름밤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어떤 세계에 나를 데려다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책보다 사람들에게 더 이끌렸다.
트레바리의 놀러가기는 그렇게 기묘한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볼 수 있는, 작지만 깊은 이탈이었다.
그날 만든 부채를 부치면, 리코더 소리와 함께 여름이 다시 온다.
기억이 아니라, 감각이 먼저 돌아온다.
가볍고 유쾌했던 그날의 축제는
어쩌면 내 안의 계절을 조금 바꿔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커다란 수박을 함께 잘라 먹고
얼굴에 씨를 붙이며 웃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가끔은 아무 계획도 없이
어떤 여름이 먼저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여름이, 의외로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