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보다 비싼 마음

by 김동현


결제창 앞에서 두 번이나 멈췄다.

페이지가 만료될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결국, 가방을 샀다.

나는 원래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 달라졌다.

이것저것 사들이기 시작했고, 나는 이것을 ‘생활용품 고급화 전략’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간헐적으로 쓰는 물건에 돈을 쓰는 대신, 매일 손에 잡히는 것들에 더 좋은 걸 쓰자는 나름의 철학이었다.

그것이 내 일상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 같았기 때문이다.


출퇴근, 주말, 여행까지 함께 다닌 가방은 벌써 2년이 넘었다.

눈 맞고, 비 맞고, 젖었다가 마르고를 반복하며 표면은 쭈글쭈글해졌고,

보부상처럼 이것저것 챙겨 다니는 버릇은 더 심해져서 가방은 터질 듯 빵빵했다.

무신사에서 산 5만 원짜리 치고는 정말 오래 버틴 편이었다.

이 정도면 새 가방을 사도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도 나는 결제창 앞에서 왜 두 번이나 멈췄을까.

나는 왜 22만 원에도 손이 달달 떨리는가.


돈은 아껴야 한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저축을 잘한다고 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 장남으로서 절약은 거의 의무였다. 그 마음이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는 걸까.

핸드폰도 마찬가지였다. 갤럭시 S 시리즈 같은 플래그십 모델은커녕, A 시리즈도 아닌 J 시리즈를 썼다.

문자와 전화만 잘 되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잘 아끼는 사람이야.” 그 말을, 지금 생각하면 필요 이상으로 자주 입 밖에 꺼냈다.

사람은 욕망에 반발하는 법이다.

갖고 싶으면서도 욕망하지 않는 척, 나는 그런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명품에 관심이 간 건 여의도에 오고 나서였다.

매일 같은 정장, 같은 와이셔츠를 입다 보니 자연스레 시선이 넥타이로 향했다.

넥타이는 참 애매한 물건이다. 옷인가, 액세서리인가.

양복점에서는 정장을 맞추면 같은 천으로 넥타이를 서비스로 만들어줬다.

그래서 한동안, 넥타이는 정장에 덤처럼 따라오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의도 사람들은 달랐다.

매일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의 넥타이는 은근히 개성이 있었다.

내 넥타이에는 그런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매일 같은 정장을 입다 보니, 결국 그 작은 물건이야말로 매일 달라질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넥타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당근마켓에서는 명품 넥타이가 유독 싸게 올라왔다.

신제품이 30만 원이라도, 중고는 1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선물은 하지만 정작 매는 사람은 적으니까. 그 이유가 마음에 들었다.

매일 양복을 입으니 실용성이라는 변명도 가능했고, 합리적인 소비라는 위안도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당근마켓에서 20개 넘는 넥타이를 샀다. 서울에서의 첫 취미였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안전한 사치인가.

명품 넥타이를 스무 개 넘게 샀지만, 백화점에서 직접 산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어떤 넥타이를 매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나는 여전히 안전한 소비 속에 있었다.

아마 그게, 이번 가방 앞에서 더 주저하게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그 무렵,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월급의 10%를 헌금으로 내면서 아깝지 않아?”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애초에 10%를 더 받은 거라고 생각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는 돈에서 자유로웠다.

나는 여전히 내 돈을 쓰고 있다고 느끼며 손이 떨리고 있었는데.


내게도 그런 마음이 가능할까.

결국 문제는 가방의 가격이 아니라, 내 돈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물품가액이 비싸 관세를 내야 합니다.”

몰랐다.

150달러 이하는 면세라는데, 내 가방은 220,000원. 159달러로 애매하게 초과했다.

22%라니.

억울함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걸 미리 알아두지 못한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지불 내역은 이랬다.


물품가: 220,000원

배송비: 39,000원

관세: 48,690원


무지에 대한 비용이었다.

그래서 다들 해외여행 다녀오는 김에 사는 거겠지.


가방은 곧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결제창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비싼 건 가방이 아니었다. 그걸 계산하던 내 마음이었다.

아마 당분간, 나는 그 마음을 계속 계산하며 살 것이다.


<덧붙임>

계산해보니 물품가액도 22만 원, 관세도 22%였다.

숫자가 이상하게도 맞아떨어져서 혼자 피식 웃었다. (홍진호가 떠올랐다.)

맨 아래에 읽을거리를 링크로 달아두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나저나 배송 참 빠르다. 주문한 지 나흘 만에 벌써 도착했다.

이러니 요즘 사람의 참을성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KakaoTalk_20250725_110147337.jpg?type=w966 사진으로 보니, 상태가 나쁘지 않은 애착 가방


image.png?type=w966 폭이 조금 더 넓어진 master-peace


image.png?type=w966 수입면장




[함께 읽을거리]


https://www.longblack.co/note/1038?ticket=NT2530b8c2ac3650b00f887fa98575c832ecec


https://www.longblack.co/note/1044?ticket=NT2530091da66581d7c64bb03ba6b9f0e43558



https://www.longblack.co/note/1050?ticket=NT2530e1d8caedb68e7f769a84173e1c0753ad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77786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 모임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