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문장이다.
사진을 찍는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길을 걷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눈앞의 장면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지금이야!"
그럴 때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구도도 모르고, 빛도 잘 모르지만,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찰칵, 버튼 한 번이면 장면 하나가 저장된다.
가끔은 내가 찍었다기보다는, 그 장면이 나에게 찍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진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
사진을 따로 배워본 적은 없다.
배워야만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요즘은 휴대폰 렌즈도 제법 훌륭하다고들 하지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란 걸 안다.
‘배운다’는 건 여전히 내게 넘기 힘든 허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에세이 필름’이라는 모임을 발견했다.
‘에세이’라는 단어에 무심코 반응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휴대폰은 대포 같은 카메라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어쩐지 화소가 아닌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는 함께 걷고, 함께 찍고, 함께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진이라는 것은 단순히 잘 찍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사진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담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예를 들면, 붐비는 지하철 사진 한 장이 기억에 남는다.
복잡하지만 묘하게 질서가 있었고,
서로를 슬쩍슬쩍 피해 가는 사람들,
그 누구도 부딪히지 않는 흐름이 있었다.
사진 속 장면은 정지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삶이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을 명확히 담아냈다.
집에 돌아온 뒤,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무심코 골랐던 하이라이트들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어딘가에는 늘 정적이 있었고,
어딘가에는 늘 여백이 있었으며,
어딘가에는 내가 좋아했던 순간이 정확히 들어 있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사진을 찍을 때마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생각했다.
혹시, 나 사진 좀 잘 찍을지도?
한동안 진지하게 카메라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가 말했다. “내껀 렌즈랑 바디까지 하면 400만 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내 실력에 그렇게 비싼 장비는 어쩐지 사치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사진은 계속 찍는다.
아직도 어렵다. 동영상은 더더욱.
정지된 장면을 잘라내는 것은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움직임을 쌓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아직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어쩐지,
사진이든 글이든 결국은 같은 걸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지나가버릴 순간을, 조금만 더 오래 붙잡아두는 일.
어디에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한 장면, 한 문장씩 조금씩 기록해간다.
그렇다.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자,
바쁘고 흩어지는 일상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오늘은 이만,
셔터 대신 문장으로 기록해본다.
모임 활동 중 가장 애착이 간 사진은 전봇대 사진이었다.
전봇대는 우리의 일상에 무척 가까운 존재지만,
대개는 복잡하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쉽게 눈길을 주지 않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면,
그 복잡하게 얽힌 전선 하나하나에도 누군가의 최선이 묻어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단정하게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은 이 담당자가, 저 선은 저 담당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덧붙이다 보니
결국 이렇게 어지럽게 엉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봇대는 묵묵히 제 일을 한다.
겉은 뒤엉켰지만, 그 안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전기를 보낸다.
이상하게도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모를 만큼 복잡해도
우리는 또 어찌어찌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주 멀리서 흐린 눈으로 바라보면
전봇대는 마치 도시 위를 떠도는 인공위성처럼 보였다.
하나는 전기를, 하나는 정보를 보내며
보이지 않는 흐름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비슷해 보이는 외형만큼 그 마음도 닮아 있었다.